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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Oct 10. 2024

네가 누구든 어떤 삶을 원하든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유난히 더웠던 8월 유발 하라리 인류 3부작 《사피엔스》로 시작된 독서여정은 한탸의 계절 가을, 《너무 시끄러운 고독》으로 끝이 났다. 금요일 밤 줌 모임을 마무리하고 라떼 스물네 잔에 작은 감사를 담아 보냈다. 회가 거듭될수록 끈끈한 연결고리와 깊어지는 읽기의 매력을 실감한다. 쌓여가는 책탑의 무게만큼 마무리의 아쉬움도 크다.


독서모임 <다정한 책생활> 8기 이야기다. 또 마음을 너무 붙이고 말았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태연한 토요일 아침, 종이 신문으로 오늘의 운세를 읽었다. 아무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가을 탓인지 자꾸 마음을 붙이고 싶은 독자 1인에게 이 말은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썸머가 떠나고 난 자리, 어텀과의 새로운 만남을 예고하는 영화 《500일의 썸머》 마지막 장면처럼.


드물게 흥미진진한 교양 역사서 《사피엔스》에서 가장 좋았던 장은 19장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행복에 관한 철학적 담론이 잘 요약된 장이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던가.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관해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직 결핍만이 인간을 사유하게 한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당신은 그것을 욕망한다는 뜻이다. 하라리는 말한다. 과학과 자본으로 견고해질 인류의 미래, 머지않아 인류는 스스로의 욕망마저 설계할 것이라고.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상반기 가장 좋았던 책 중 하나는 김유태 기자의 《나쁜 책》이다. 한때의 금서들의 목록인데,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도 그중 하나다. 그는 흐라발을 동시대 작가 밀란 쿤데라와 비교한다. 쿤데라의 소설에는 토마시같은 성적 자유를 획득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허무주의적 지식인이 등장하는 반면, 흐라발의 소설에는 무력한 지식인이자 성적 불구의 인물이 자주 나타난다는 것. 성(性)의 실현이 한 인물의 자아를 형성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볼 때 흐라발의 남성상은 좌절된 동시대인들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배울만큼 배운 둘은 생애도 대조된다. 쿤데라는 프라하 예술 대학 교수였고 흐라발은 카렐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체코가 소련에 점령당한 후 쿤데라는 공산주의 체제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해 작가로 성공하지만, 흐라발은 체코에 남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삶으로 글을 쓴다.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아래 문화적 자본이 풍부한 유년기를 보낸 쿤데라와 달리 흐라발은 생부를 알 수 없었을 정도. 그런 그에게 책은 유일한 안식처이자 피신처였을 것. 소설의 주된 정조가 자유나 저항이 아닌 ’연민‘인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폐지 압축공 한탸의 슬픔에 스토너가 포개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직함과 성실함보다 적당한 처세와 유연함이 미덕인 시대. 자기계발서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오직 변화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묵묵히 주어진 몫의 삶을 견디다 간 문학 속 인물들에게 독자는 참을 수 없는 연민을 느낀다.


다시 하라리의 행복론으로 돌아가서, 그가 찾아낸 행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행복은 외적 조건도, 생물학적 호르몬도, 찰나의 감정도 아니다. “행복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자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 (사피엔스, p.571)


책을 혐오하던 한탸의 옛 연인 만차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욕망을 실현하며 비상했고 쿤데라는 조국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해 성공한 작가의 삶을 살았다. 비록 한탸는 압축기 속에서 책과 함께 생을 마감했지만 흐라발의 소설은 여러 번 영화화되었고 그는 오늘날까지 체코의 국민 작가로 존경받는다.


진부한 결론이지만, 결국 정답은 나에게 맞는 길을 어떻게 개척해나가는가에 있지 않을까.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 근사하고 멋진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 7인치 액정 속에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엔 너무 아름다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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