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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워치가 건넨 아버지 마음의 평화

시계 한 줄이 읽어주는 삶의 의지에 대해

by Karel Jo


15시간에 걸친 대수술은 어머니와 누나들, 우리 가족에게 있어 모두의 인생에 그토록 절실하게 끝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시간으로 치면 첫째 아이가 태어나던 그날, 가족분만실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나의 아내도 있긴 했지만, 적어도 그때는 곁에 있으며 상황을 볼 수 있었던 때니 마음 졸임은 아무래도 덜했다.


물론, 우리의 기다림의 불안과 힘듦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수술실 안에서 있었을 테니 그저 무사히 끝난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며, 새삼 오랜 시간을 고생하신 교수님 및 의료진, 그리고 환자 자신이셨던 아버지의 삶에 대한 노력에 감사와 존경심을 표할 뿐이다.


상대적으로 길었던 수술시간에 대한 반발인지, 아버지는 빠르게 중환자실에서 회복하여 우리가 예상했던 때보다 며칠 일찍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내려오실 수 있었다. 며칠간 어머니께서 집을 비우셨기에 그 주말의 일요일에 나는 아버지를 뵙기 위해 병원으로 갔고, 어머니와 교대해 지친 어머니를 좀 쉬시게끔, 그리고 걱정하시는 집도 좀 정리하실 수 있는 시간을 벌어 드렸다.




결혼하기 전에는 이따금씩 아버지와 함께 저녁 시간에 좋은 안주를 놓고 소주도 한두 병씩 비우던 사이였던 나와 아버지는, 결혼 후에 서로가 따로 살기 시작한 뒤부터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 점점 적어졌다.


나 또한,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 새로운 가정을 꾸린 사람이었고, 그러다 첫째 딸이 태어나기 시작한 뒤부터, 나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 날부터는 더더욱이나 이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보다는 각자 가정의 아버지’로서의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안산에서 같이 살던 때에는 상황이 나았다. 멀다고는 해도 그래봐야 같은 시에서 30분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 나이가 들어가신 아버지를 위해 우리는 가끔씩 스크린 골프를 치기도 하고, 스크린이 답답하던 때에는 밖에 있는 골프 연습장에서 우리 나름대로의 공의 궤적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용인으로 이사 간 이후부터는, 차로 1시간 걸리니 시간 자체는 멀어지지 않았어도, 물리적 거리의 km단위가 달라지게 되니 무작정 ‘지금 잠시 들를게요’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서로의 환경이 달라진 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다. 그 사이에 아버지와 그렇게 길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어머니와 교대한 후 머물렀던 4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간, 아버지에게 많은 걸 배워서 지금 훌륭히 자랄 수 있었다는 말들, 남편과 아버지로 사는 게 새삼 어렵다는 말들, 병은 가족력이니 나 또한 이제는 조심해야 한다는 ‘내 아버지’로서의 ‘아들’에 대한 조언 등, 우리는 쉬지 않고 병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아직 채 빠지지 않은 노폐물 줄과 여러 상태 확인을 위한 줄을 달고 계시던 아버지가 내 손에 있는 갤럭시 워치를 보더니 “요새 시계에 뭐 심박수니 산소포화도니 다 체크돼서 나온다더니 그게 그거니?”하고 슬쩍 물어보셨다.


병실 베드 앞에 달린 산소포화도나 심박수 수치가 나오기는 하는데 진짜 저 상태인지가 궁금하시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나는 내 손목에 있던 워치를 잠시 풀어 아버지 손목에 매어 드렸고, 베드에 달린 기계와 비슷한 수치가 나오자 아버지는 신기해하시며 눈을 반짝이고 현대기술에 감탄해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뵈며 나는 아버지에게 “하나 사드릴까요?”하고 물었지만 보통의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그렇듯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며 됐다고만 말씀하셨다. 복잡한 기능도, 비싼 것도 지금의 당신에겐 아무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그 눈에는 여전히 그래도 관심이 채 가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은 그냥 돌아갔지만, 며칠 뒤 큰누나가 카톡을 보내오며 혹시 심박수나 산소포화도를 체크할 수 있는 가성비 워치밴드 좀 아냐고 물어봤을 때, 그렇게 나는 아버지께 워치를 사 드리기로 결심하고 주저 없이 내 모델과 같은 모델을 주문했다.


로켓배송은 아니었기 때문에 배송이 생각보다는 하루 이틀 더 걸렸지만, 워치가 배달되자 아직 말을 길게 하시기엔 숨이 가쁘신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나에게 뭘 이렇게 비싼 걸 샀냐면서 구박하시면서도, 너네 아버지가 손목에서 워치를 차고 이것저것 재면서 신기해하며 난리라고 기분 좋은 톤의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번 주에 아버지 퇴원 기념으로 다 같이 오랜만에 모인 점심식사 자리에서도, 아버지는 매번 손목을 보시며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심장이 새롭게 뛰고 있음을 기뻐하고 계셨다.




그 워치의 숫자가 말해 주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일지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는 수술이 잘 마쳐져 이제 새로운 심장으로 인생을 더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의 증거였다. 내가 아버지에게 드린 건 그저 시계 한 줄이었겠지만, 아마도 아버지에게 그것은 이제 자신의 상태를 언제든 알 수 있는 미래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 작은 선물을 통해, 나는 이번에도 배려란 뭔가 거창한 마음가짐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을 생각하며 작고 따뜻한 행동을 실천한다면, 그것이 진심 어린 그 사람에 대한 삶의 존중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제 아버지께서는 그 희망을 안고 예전보다 더 힘차게 살아가실 것이다. 비록 언젠가는 끝을 향하는 날도 오겠지만, 지금처럼 현재를 소중히 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지낸다면, 그날이 오더라도 깊은 상실감과 허망함에 그리 오래는 아파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 이 희망찬 기분도, 모든 게 잘 끝났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긍정적인 마음만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워치 한 줄은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미래와 평화를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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