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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아빠 엄마 이전에 가졌던 연인이라는 이름

by Karel Jo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한국에도 이게 들어올 줄 몰랐다면서 인스타그램 링크로 보내준 곳이 있었다. 영상 속에는 반을 가른 속에 갖가지 재료를 채워 넣은 크로아상 샌드위치와 커피가 나오고 있었고, 나는 ‘원래 있던 건데 이게 왜’라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봤다.


그런 나를 보며 아내는 고개를 저으며 이름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화면의 한 곳을 짚었고, 그곳에는 르비우 크로아상이라고 가게 이름이 적혀 있었다.


르비우는 우크라이나 서부의 중심 도시로, 그곳의 이름을 딴 이 카페는 내가 아내와 연애할 때만 해도 우크라이나에서 잘 보이지 않는 가게였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동유럽 근교에만 유행하던 집이라고 했는데 뜬금없이 한국에 진출했다는 사실은 나도 나지만 아내를 무척 놀라게 했다.


크로아상 샌드위치 자체는 솔직히 별 색다를 것 없는 메뉴였지만 아내가 가고 싶어 하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나는 저장해 놓고, 언젠가 주말에 한번 가야겠다 하고 마음만 먹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한동안 아내와 단 둘이 어딘가를 가본 적이 지극히 오래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구미공장 출장 가기 전에 하루 연차 내고 당신이 가고 싶다던 거기 갈까? 45분 밖에 안 걸려, 첫째한테는 비밀로 하고”


아내는 순간 망설였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어린 둘째 딸은 어쩔 수 없이 데려가야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오늘 오랜만에 첫째 딸에게는 조금 늦게 회사를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유치원에 등원하자마자 차를 몰아 오랜만에 셋이지만, 마음만은 둘이서 드라이브를 나갔다.




차 안에서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나 아이돌 노래가 아닌, 우리가 예전에 듣던 옛날 노래를 들으며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때에, 아내의 표정은 더없이 밝아 보였다. 비록 옆자리에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둘째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고 있었긴 했지만.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에 길면 얼마나 길었겠는가. 조금이라도 얘기하려 치면 옆에 와서 놀아달라 치근대는 첫째, 거기에 덩달아 아우우우 소리를 내는 둘째, 오랜만에 수다를 떨며 달리는 차 안은 조곤조곤했지만, 풍성한 대화로 가득 차 있었다.


크로아상 카페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메뉴와 음료를 시키고, 집안일이 아닌 다시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있노라니 마치 예전에 연애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 특이한 커플이었던 우리는 TV 예능이나 드라마를 둘 다 잘 보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어떤 주제에 대해 뜬금없이 확장되는 이야기를 즐기곤 했다.


그러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야기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는 집에 뭘 사야 할지, 아이에게 자전거를 사야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한적한 시간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있자니 어느새, 아내의 손에 내 손을 포개고 우리는 그저 빙긋 웃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쇼핑의 시간을 보내주며 혼자 유모차를 끌고 30여분 쇼핑몰을 빙빙 돌아다니고 다시 마주친 아내는, 아이의 부모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한 여자의 모습으로 나에게 환한 웃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내에게 짧지만 그래도 조금은 즐거웠는지 물었고, 아내는 그런 나에게 대답 대신 조수석에서 내 오른손을 꼭 잡아주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아마도 가끔은 이렇게, 우리는 아빠와 엄마가 되어 버렸지만, 그 세상의 무게를 잠시 벗어던지고 우리 둘에게 주는 작은 휴가가 진작에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틀림없이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겠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분명 서로를 사랑해서 만나 결혼한 서로의 연인이기에.


오늘 같은 하루를 계속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이제 곧 저녁 시간에 다시 아빠와 엄마가 되어 두 딸들과 함께 시간을 흘려보내겠지만, 언제든 또다시 서로의 연인으로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믿는다.


비록 나 또한 아내의 첫 한국인이 아니고, 아내 또한 나의 첫 우크라이나인이 아니지만, 우리는 이제 서로의 마지막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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