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한다는 것,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
원래부터 그다지 긍정적인 성격은 아니었던 나는, 기분부전증이라고 해도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정도의 극심한 상태는 아니었던 상태로 살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 굳이 기꺼이 어울리지 않으려 했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타인이란, 믿음을 주어도 언젠가 이 사람이 나를 어떠한 형태로든 배신하고 떠나갈 수 있다는 불안요소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오로지 내가 원래부터 태어날 때부터 함께하고 있었던 가족만이 그 생각에서 예외적인 존재들이었다. 나는 친척도 그리 믿지 않았고, 부모님들의 친척들이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더더욱 그런 생각을 굳혔다. 아이러니하게 내 자식의 친척이 될 누나들은 믿었다는 사실이 좀 웃기긴 하지만, 결국엔 한 뿌리에서 직접적으로 이어진 것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타고났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던 내가 아내를 만나고, 매년 누군가에게 질리거나 그 의심의 끝에 결국 관계의 종결을 맺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나는 1회성 연애를 반복하던 내가 벌써 8년이나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걸 보면, 나에게 있어 아내는 틀림없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내가 지난 2년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스스로의 무너짐을 필사적으로 남편과 아이 아빠라는 이름으로 대신하며 붙잡고 있었을 때 나를 가장 강하게 받쳐준 사람이 아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힘들 때 나는 보통 동굴로 들어가 버리곤 한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길 바라며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저 어딘가 몸을 기댄 채로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끊임없이 나라는 사람의 한계가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는 것인지를 동시에 스스로에게 책망하곤 한다.
아내는 그런 나를 굳이 꺼내려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대신 내 공간에 그저 말없이 들어온 채로,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거기서 같이 등을 맞대주고 있을 뿐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좀 더 필요한 사람은 지속적으로 나를 밖으로 내보내 줄 태양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나는 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은 없는 사람인지라 나에게는 내가 무슨 상태에 있어도 나를 그저 옆에서 기다려줄 뿐인 달빛 같은 아내로도 충분히 힘듦을 이겨낼 수 있었다.
비록 많은 시간이 걸렸고, 아내 혼자만의 도움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다른 많은 마음도 틀림없이 있었지만, 역시 그래도 나를 다시 바닥에서 올라올 수 있게 해 준 건 그녀의 믿음과 기다림이다.
그런 아내가 요새 부쩍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주부의 마음,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포화 속에 때때로 친구의 일상생활이 피격당함을 지켜봐야만 하는 마음, 그러면서도 바깥에서 혼자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며 먼 거리를 출퇴근하는 나를 충분히 관리해주지 못한다는 아내의 마음.
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온통 미안함으로 어느새 가득 차 있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더 해주지 못한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나는 아내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미 충분히 많은 걸 다 하고 있다라고. 덜 미안하고 더 미안한 것도 없고, 누가 누구에게 더 많이 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내가 바깥에서 일하는 건 분명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아내 또한 집에서 아이 둘과 집안을 관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내 힘듦을 제대로 관리해주지 못하는 만큼 나 또한 바깥에서 힘들게 돌아왔음을 핑계로 하지 않고 있는 일도 많이 있다고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점은 내가 무엇인가를 더 바라거나, 내가 무엇인가를 더 못하고 있음이 너무 극명하게 티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왜 내가 이만큼이나 해주는 데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지’ 라거나, ‘저 사람은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데 난 그렇게까지는 못하는데’ 라거나, 모든 관계에서 오는 문제의 원인은 결국엔 ‘깨진 밸런스’에서 오는 불안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가 정말로 진실되고 미래를 담보할 관계라면, 지금 당장에 누가 더, 또는 덜 주는 일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할까. 사람의 시간은 각자가 다르기에 지금의 내가 좀 더 많이 받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내가 더 줄 수 있을 때 더 많이 주면 될 것이고, 당장에 내가 더 주는 것 같다면, 그만큼 내가 여유가 넘친다는 말일 테니 더 즐겁게 주고받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가 아니겠는가.
나 또한, 괜찮아지기의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져 왔을 것이고, 그에 따라 내가 받았다고 느끼는 그 이상을 돌려주기 위해 더 나은 상태가 되어 보려고 매일을 살아가 보고 있다. 우울증은 틀림없이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어두운 시간이었지만, 어쩌면 나는 그 시간 동안 조금은 더 관계에 대해 배웠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