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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추어탕 한 그릇에 멈춘 고향의 기억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가는 그곳

by Karel Jo


내가 태어난 곳은 군산이지만, 실질적으로 초등학교부터는 군산을 떠났으니 나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은 곳들은 군산에는 몇 군데 없다. 오히려, 어머니의 본가인 남원을 성인이 되기 전까지 매년 빠지지 않고 방문했으니 나에게 있어 고향, 또는 시골이라는 말은 남원의 그 작은 시골길에 머물러 있다.


옛 어르신들이 으레 그렇듯이 아버지 쪽도 꽤 대가족이었지만, 어머니 쪽 또한 못지않은 대가족이었다. 어머니는 2남 4녀 중 3녀로, 각자 자기 자식들이 있었으니 명절마다 남원집으로 내려가면 족히 30명이 넘는 인원이 모이는 경우도 잦았다. 자식들이 결혼하게 된 이후부터는 더더욱이나, 마당이 사람들로 가득 차 동네 회관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정도였다.


맛의 고장 전라도에서 자란 사람들답게, 전주에 사시는 큰외숙모와 어머니, 그리고 이모들은 가족들을 위해 매번 엄청난 손맛을 선보여 주셨다. 그러나 해를 거듭해도 내가 하나 적응하지 못하는 음식이 있었는데,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남원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인 추어탕이었다.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남원식 추어탕을 먹을 수 있지만, 경기도에 처음 올라와서 갈지 않은 통추어탕을 봤을 때, 내가 추어탕을 즐기지 않았음에도 굉장히 낯선 느낌을 받았다. 추어탕을 싫어했던 이유는 굉장히 단순했는데, 남원에서 올라올 때면 할머니 댁에서 어머니는 큰 양동이 냄비에 한 솥 가득히 추어탕을 담아 차에 실어 한 달 내내 추어탕을 주시곤 했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초등학생 입맛에 산초와 들깨가루가 듬뿍 쳐진, 시래기 가득한 추어탕은 아무래도 입맛에 맞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걸 한 달 내내 밥상에서 봤어야 했으니 내가 추어탕의 추 자만 들어도 질색하며 찾지 않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추어탕을 처음 먹기 시작한 때는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난 뒤였다. 지금에야 혼밥도 하고, 알레르기를 중시하니 못 먹는 음식도 미리 조사하곤 하지만 예전 시대의 신입사원들 선임들이 먹자고 하는 메뉴에 토를 달거나 따로 먹겠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시절이었다. 그렇게 어느 점심에, 추어탕을 처음 입에 넣었다.


첫 숟갈의 느낌은, 미꾸라지가 곱게 갈려 들어간 진득한 국물 맛에 씹는 식감이 살아 있는 시래기의 맛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입맛에는 달고 기름지지 않은 그 국물이 좋지 않았겠지만, 술과 고기를 회식이라는 이름으로 달고 사는 직장인에게는 그 개운함이 전날 마신 술로 힘들어하는 위장을 사르르 달래주는 할머니 손길과도 같았다.


그렇게 한 숟갈씩 어느덧 뚝배기 하나를 다 비우고 나니, 왜 아버지가 힘들게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 밥상 위의 추어탕 그릇을 보며 즐겁게 식사하셨는지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아버지에게 있어 어머니 고향의 추어탕은, 자신의 고된 하루를 수고했다며 멀리 있는 장모님께서 보듬어주는 따스한 위로 한 국자와 같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이 드신 외할머니를 코로나 시절과 둘째 아이 출산을 이유로 몇 년째 찾아뵙지 못하다가 이번 연휴에 모처럼 나는 다시 남원 고향길로 찾아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연휴길에 귀성을 해보니 녹록지 않은 운전길이 조금은 힘들었지만, 마을 어귀에서 우리의 차를 발견하고 어린 소녀같이 기뻐하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추어탕 맛과 시골집의 풍경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해 주며 가끔은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봐야 한다는 말을 해 주는 것만 같았다. 어릴 적에는 몰랐던 그 깊은 맛이, 이제는 나에게 고향이 주는 위안도 서서히 다가와 말없이 나를 반겨주게 되었다.


언젠가, 세월이 지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많은 부목을 댄 마을 중앙의 은행나무처럼 지금의 이 고향도 어느 순간은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은, 우리의 추억은 비록 다시 잊혀지며 그렇게 불완전하지만, 나는 추어탕에 남은 이 기억만은 흐려지지 않게 오래오래 남길 바란다. 뜨겁고 조용한, 추어탕 그릇 마지막 한 숟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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