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만 모두에게 얇게 쳐진 소리의 장막
용인시 처인구에서 여의도로 출퇴근을 하는 나에게, 매일의 통근길은 짧은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서울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역에 내려 IFC건물로 들어가는 길은 꼬박 두 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회사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매일 어떻게 이곳을 오냐고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름 적응하며 즐겁게 지내려고 하는 중이다.
긴 출퇴근 시간은 바꿔 말하면 나 혼자만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하루의 얼마 안 되는 동굴 속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로 나는 이어폰을 꽂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때로는 창 밖을 보며, 때로는 눈을 감고 기분 좋았던 장소의 풍경을 그리며 생각에 잠긴 후, 그 이야기를 브런치에 천천히 써 내려가는 행복으로 긴 출퇴근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제,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자 '띠딕'하고 연결음이 울리고 재생목록에서 매일 듣는 노래가 흘러나오던 중, 평소에 듣지 못했던 알림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휴대폰의 알림 창에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경고 메시지가 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폰은 블루투스 연결이 끊겼고 나는 그렇게 귀에서 이어폰을 빼낼 수밖에 없었다.
평소답지 않게 왜 충전하는 걸 잊었을까? 결산과 사업계획에 시달리다 보니 아마도 케이스를 충전해야 한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후회해도 이미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깨끗한 귀를 열고 출근길 버스에 앉아있게 되었다. 잠은 오지 않고, 아직 도착지까지는 40여분이 남은 무료한 시간. 나는 그저, 버스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노이즈캔슬링 없이 듣는 세상의 소리가 들려왔다. 버스가 달리며 가속할 때 생기는 엔진 소음. 서울 근처에 접어들어 차가 막히기 시작하자 감속할 때 생기는 마찰음. 오랜 시간 동안 버스를 타서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바스락대는 소리와 너무 피곤한 누군가가 들려주는 코골이 소리. 평소의 음악과는 다른 리듬감 있는 소리들이 가득 차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난 후 서초구 길바닥 위의 소리는 버스 안에 있을 때보다 더 다채로웠다. 벌써부터 영업하고 있는 가게 앞에서 흘러나오는 철 지난 노래. 카페 밖으로 커피 한 잔을 사 가시는 사람들이 나누는 아침 인사말. 출근 시간이 촉박한 지 지하철 계단을 후다닥 뛰어내려 가는 누군가의 탭댄스. 그것은 내가 들을 수 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던 삶의 소리였다.
얼마나 이렇게, 스스로만의 세계에 걸어 잠긴 채로 돌아오지 않는 소통을 원하고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세상을 무시하고 귀를 걸어 잠근 채로 멀리 있는 화면 안의 세계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 어쩌면 나는, 우리는 삶과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멀리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이어폰 없이 출퇴근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에,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아이가 자라는 미래 시대엔 과연 이들이 어떻게 연결된 삶을 살까. 하는 말을 꺼냈다. 아내는 마시던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며 아마도 미래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 거라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 가장 멀리 소통할 거라고 말했다면 그런 세상이 어디 있냐고 헛웃음 쳤을 테니 말이다. 핸드폰이 주된 사회가 아니었던 시절, 그때와 지금은 다르니 20년 뒤의 미래엔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감히 지금은 가늠할 수 없는 미래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세상과 다시 연결된 그 기분이 어쩐지 싫지 않았다. 시끄럽기도 하고, 나긋나긋하기도 하고 조금은 익숙하기도 했던 주변 소음은, 어쩌면 그동안 내가 가까이에 두고 잊고 살았던 잊혀진 장난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은, 이어폰을 버리고 세상의 소리를 느끼며 출근해 보려 한다. 세상의 다양함과 연결되어, 나 자신의 내면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