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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에게도 할머니를 선물해야겠다

누구나 갖고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그 이름

by Karel Jo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제일 먼저 외치는 이름은 엄마일 것이다. 아빠를 많이 들려주면 아빠를 먼저 말하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내 경우에도 우리 두 딸은 모두 엄마를 먼저 불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보다 더 하루에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때로 꾸짖음에도 언제나 깊은 사랑과 함께 자라나고 있으니.


그러나 처음 부르는 이름은 엄마일지라도, 아이에게 가장 특별한 기억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은 아빠도 엄마도 아닌 다름 아닌 '할머니'일 것이다. 이 말을 듣는 누군가의 할아버지들이 서운해할 말이겠지만, 할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그 마음 깊은 곳의 따스함은 우리 모두의 기억에 전 세계를 막론하고 남아 있다.


할머니가 주는 기억은 어째서 그렇게 특별한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아이에게 있어 할머니란, 아빠나 엄마가 주기 어려운, 무조건적인 사랑 그 자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실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나는 친가 쪽으로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어릴 적 돌사진에 나를 안고 계시던 분은 사진에 남아 있지만, 내가 두 살이 되었을 즈음 운명을 달리하셨다고만 알고 있어 나에게 할머니라는 존재는, 외가 쪽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안타깝게도 전부다.


그마저도 외가가 꽤 멀었던 탓에, 어릴 때 명절이 되어야만 일 년에 두어 번 남짓 방문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외할머니는 언제나 우리가 집 대문을 들어서면 버선발로 나와 이 먼 곳을 힘들게 와서 어쩌냐고 손사래를 치며 나를 쓰다듬어 주신 기억이 난다.


사랑채 방에서 몸을 뒹굴뒹굴하다 보면 한 상 가득 밥상이 들어오고, "시골이라 찬이 없어 어찌냐~"하시며 선물 받은 햄도 구워 주시고, 조기를 못 발라 먹을까 봐 큰 살점을 떼어 밥그릇 위로 얹어 주시곤 했다. 살이 되어도, 외할머니에게 있어 나는 그저 어린아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밥을 한 그릇 비우고 나면 할머니는 내게 잘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생각해 보면 뭘 해도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신 기억뿐이다. 고구마 밭에 가서 고구마를 캘 줄 몰라 서툰 호미질에 고구마를 잘라먹었을 때도, 도랑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넘어졌을 때도, 논에 있는 허수아비를 넘어뜨렸을 때도 할머니는 그저 잘했다, 괜찮다고 하며 나를 안심시켜 주시고 믿어주시기만 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외할머니의 생신을 맞아 내려간 그곳에서, 기억이 흐려지시고 귀도 많이 어두워지셨지만 여전히 나를 본인의 어린 손자로 바라보시며, 증손녀를 안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의 따스함이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끝마다 "잘했어, 잘했어"라고 하시는 할머니는, 여전히 나의 가장 큰 믿음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연이었을까, 그렇게 돌아온 시골길에 첫째 아이가 요새 부쩍 문득 한국 할머니도 좋지만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보고 싶다는 정도를 떠나서, 할머니가 집에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매일 저녁 나와 아내에게 투정 부리며 몇 밤을 더 자야 우크라이나 할머니가 집에 오냐고 말했다.


딸이 그리워하는 장모님을 우크라이나 본국으로 다시 보내드린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어가는 일이다. 첫째 딸이 왕성하게 자라 어린이가 되어가고 있고, 둘째 딸의 걸음마를 직접 보시며 행복한 기억만 안고 돌아가신 그날이 벌써 그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장모님은 본국에서 더 열심히 본인의 생업을 이어가고 계시고, 아이들은 날이 다르게 자라고 있다.


아마도 첫째가 장모님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를 것은 자르고 해 줄 것은 해주는 나와 아내에 비해 어떤 일이 있어도 품 안에 자기를 안고 다독여줄 '할머니'의 존재를 깨달았기 때문일 거다. 한국 할머니도 좋아하지만, 손주가 많아 사랑이 분산되는 내 어머니에 비해 장모님은 손주가 우리 집 하나니, 딸아이는 좀 더 사랑받는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그래서 문득,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기억을 선물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지만, 아이에게 좀 더 그 특별한 사랑과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아이의 미래에 잔잔히 남을 삶의 기둥이 되어줄 것이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믿어주고, 언제나 응원해 주는 깊은 사랑으로 말이다.


사실은, 그러면서 아내가 좀 더 편했으면 하는 속내도 있지만, 팀원 중 한 명이 나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로 어쨌든 사랑이 다 이기지 않겠나. 즐거웠던 그때를 오래 이어가기 위해, 나는 이제 장모님을 설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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