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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검진과 접종, 예전엔 어떻게 자랐지?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영유아 검진과 예방접종

by Karel Jo


2020년 첫째 딸이 나와 아내의 품으로 다가와 가족을 이루던 그 감동의 시간 이후, 조리원을 퇴원하면서 산부인과에 있던 소아과 선생님이 육아수첩 안에 여러 가지를 체크해 주시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수첩 안에는 아이가 이미 맞은 몇 가지 예방접종 외에도, 10개가 넘는 필수 예방접종을 언제 맞아야 하는지가 정리된 빼곡한 스케줄표가 한가득이었다.


지금에야 이미 해봐서 익숙한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예방접종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 전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맞은 주사는 수두나 독감 정도였던 것 같은데, 내 아이에겐 로타바이러스니, 디프테리아니, 파상풍이나 백일해니 난생 처음 들어온 병을 방지하기 위해 몇 개월 단위로 꾸준히 병원을 내원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적잖이 놀랐었다.


특히, 악명 높은 폐렴구균 주사를 맞았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둘째는 다행히 접종일에 주사 반응이 그리 특별하지 않아 맞은 날에도 컨디션이 안 좋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첫째는 주사를 맞는 날이면 항상 축축 처지곤 했고, 첫 폐렴구균 주사날에는 고열까지 동반하며 생애 첫 해열제를 먹고 토하고 먹으며 우리 부부의 진을 빼놓았다.


예방접종은 당연히 맞아야 할 주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더 힘든 건 영유아 검진이다. 소아과가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영유아 검진은 이제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는데, 제때 진행하지 않으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도 문제가 되니 부랴부랴 당일날 가능한 소아과까지 멀리 원정을 가야 하는 때도 생기곤 한다.


이제 둘째를 키우고 있으니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일이지만, 첫째가 대부분의 접종과 검진을 마치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체 예전엔 어떻게 아이를 키웠지?'라고.




어머니 말씀을 들어 보면 나는 어린 시절 많이 아팠던 아이였다고 한다. 4살인가에 몸이 너무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했는데 수액을 놓을 방법이 없어 머리 쪽에 주사를 놔서 수액줄을 달고 입원했던 적이 있다든지, 잔병치레가 너무 많아 한약을 달여 먹이는 데 돈이 많이 나갔다든지. 말을 들어 보면 지금의 건강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허약한 아이였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한번 여쭤본 적이 있다. 내가 어릴 때도 이렇게 예방접종이 많았느냐고. 어머니는 "예전엔 그냥 키웠다. 잘 자라길 바랄 뿐이었지"라고 빨래를 개면서 웃음으로 답하셨다. 쉽게 말씀하셨지만, 그 말에서 나는 어쩐지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지금은 별 거 아닌 병도 그때는 어려운 병이었을 수도 있고, 그 시간을 견뎌 지금의 우리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내가 어릴 때까지가 아마 마지막 세대였던 것 같다. 아이를 낳으면 여전히 돌잔치를 축하하고 칠순보다는 환갑이 더 의미가 컸던 시절. 그건 아마도 이렇게 아픔을 이겨내고 살았어야 했던 때의 사람들끼리 서로 수고했다는 증표와 같았을 거다. 그렇게 지금은, 이렇게 잘 관리되고 있는 의료지원의 증표로 당연히 돌 때까지 건강하고, 환갑을 넘기지 못하는 게 위로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옛날에 비해 예방접종과 영유아 검진 등이 고도화되었다고 하여 그때와 지금의 아이에 대한 사랑의 농도가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본질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것 하나뿐이지 않을까. 그저 예전엔 할 수 있는 것이 기도였다면, 지금은 의학적 근거로 팔에 주사를 찔러 넣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오늘도 수첩 한 켠에 예방접종을 무사히 마쳤다는 도장 하나를 찍고,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검진 기록표를 손에 넣고 나는 병원을 나왔다. 아이는 주사를 맞고 침울해 있고, 나는 앞으로도 무수히 맞아야 할 육아수첩 안의 빈 공간을 보며 짐짓 힘들고 무서운 마음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건 사랑의 농도다. 어제의 엄마와 오늘의 나 모두, 그저 아이가 잘 자라길 바란다는 것.


새삼, 부모가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주사 바늘 끝을 통해 또다시 배우게 된다. 어딘가에서 예방접종을 맞힐 부모 누군가에게, 오늘의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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