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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시간낭비의 최대 주범 = 대면보고

오늘도 들려오는 “메일만 보내면 다야?”를 흘려보내며

by Karel Jo


하루 회사 업무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받은 이메일을 읽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읽은 이메일에 대해 내용을 담아 회신해야 하는 일이다. 직급이 위로 올라가게 될수록 참조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져 이메일은 반드시 나를 대상으로 날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내가 대상이 아니어도 앞장서서 회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떤 날은, 그러다 보면 하루 종일 이메일만 회신하다 하루가 가는 날도 있고, 휴가라도 일주일 이상 다녀오면 메일함에 읽지 않은 메일함이 몇백 통 쌓여 미리 휴가 전날에 쳐낼 건 쳐내는 준비를 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에서 이메일은 왜 그리 중요한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것은 ‘서면’으로 남는 기록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회의에서 나온 말들이나, 요새야 자동녹음이 된다고는 하지만 통화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 말이 와전되거나, 사라질 수 있는 반면 이메일은 어떤 의미로든 메일함이나 서버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상은 남아 있는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반드시 공문의 형태를 띠어야만 문서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간단한 업무 협조 요청도 말로 할 때보다 “팀장님 넣고 메일로 요청해 주실래요?”라는 말을 듣게 되면 간단하지 않아진다. 다시 말해, 사람의 회피본능을 정면으로 깨기 때문일 거다.




이렇게 메일이 기록물이라는 인식이 나에게 있어서 그런지, 나는 메일을 쓸 때 보통 짧게 쓰는 법이 없다. 인사말로 한 줄을 띄우고 나면 메일을 보내는 경위, 메일에 담길 내용, 그리고 마지막에 기한이 필요하면 기한을 강조하거나, 메일 회신에 담겼으면 하는 내용을 정리해서 보내는 편이다. 이건 아마 대면보고보다는 서면보고를 더 선호하는 내 성격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때로, 내 나름의 정성 들인(?) 메일에 단 한 줄로 회신이 오는 경우가 있다.


“짧게 회의해서 정리하시죠”


솔직한 말로, 저 정도로만 말해줘도 꽤 점잖은 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대부분 “메일을 하루에 몇 통을 받는데, 메일만 보내면 다인가요?”하고 왜 전화나 메신저로 내용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되려 화를 내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메일을 길게 쓰면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불평은 덤으로 갖고, 내용은 읽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30분짜리 짧은 회의가 바로 세팅되는 경우도 자주 생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이메일로 회의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메일 내용에 추가 자료 보완이나 궁금한 점을 한 줄로 ‘이건 뭔가요?’라고 와서 회신을 보내면 ‘알겠습니다’라고 마무리가 되는 운 좋은 케이스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줄줄이 대여섯 건 정도의 메일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도 흔하다. 나만 대상으로 받으면 모르겠는데 관련인이 몇 명쯤 참조인에 들어가 있다 보면 그분들의 메일함에 쌓일 스팸이 생각나 슬슬 죄송해질 지경이다.


직장을 다섯 군데를 다녀본 결과, 내 나름의 경험을 토대로 도출해 보니 보통 정리되지 않고 메일을 메신저처럼 쓰는 회사일수록 공통점이 하나 있는 것이, 품의서나 결재문서의 내용이 굉장히 부실했다.


예를 들어 고객사의 품질 문제가 발생하여 매출채권의 미수차감을 진행하는 품의라고 하면, 기안지 내용이 ‘품질문제 발생으로 인한 클레임 처리 비용 xxx$입니다’라는 식이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니, 이메일이든 결재문서든 내용을 길게 써 봐야 결재권자들이 제대로 읽을 생각은 없고 어차피 회의를 소집하거나 대면보고를 받고 진행하기 때문에 문서의 내용을 중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문서화는 그저 회사의 절차를 지키기 위한 요식행위에 가깝고, 모든 실질적인 업무는 결국에 ‘대면’으로 이뤄져야 하는 회사들이 보통 이메일의 내용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내용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서면보다 대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서면으로 보고된 자료를 검토하는 데는 나도 시간을 꽤 소요하고 내가 궁금한 점이 있을 때 그걸 해소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대면보다 더 소요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도 팀원들에게 급한 내용이 있으면 대면으로 보고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물론, 팀원들이 나에게 대면보고하는 것에 더 안심하기 때문인 것도 조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관리자들이 앞으로 더 서면보고에 익숙해지고, 말이 아닌 글의 완성도를 높여 ‘기록물’을 관리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선을 넘어가면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아 생각을 나누고,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는 대면보고의 효율성을 충분히 누려야겠지만, 솔직히 하루에 30분짜리 회의만 6~7개가 잡혀 버리면 자료를 제대로 검토한 적도 없으니 추가 회의만 생기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서 다시 일해야 하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지 않았나.


‘메일을 하루에 몇 개나 받는데’라는 핑계는 관리자로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메일을 많이 받고, 많이 읽고, 자기 생각을 충분히 담아 메일을 회신해야 그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의 업무 방향을 제대로 잡아줄 수 있고, 내용이 부족하면 내용을 채워나갈 수 있는 ‘조타수’의 역할이 관리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지금의 이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 훗날 리더로 올라가는 일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을 잘 지킬 수 있어야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직장인들의 사회에 “메일만 보내지 말고 전화나 회의를 하라고!”라는 윽박지름이 사라지는 날이 가까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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