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경험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다
지금에야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1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이직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애초에 채용 요건에 대놓고 명시는 안 해도, 이직 횟수 3회 이하 같은 조항을 걸어 서류 필터링에 사용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직 횟수는 능력의 상징이라기보다는, 부적응의 증표로 쓰이곤 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이런 문화는 많이 바뀌어, 이직 사유만 합당하다면 수많은 퇴사경험은 그리 흠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사실, 회사를 자주 바꿨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해 그 많은 회사들의 면접을 통과했다는 의미 아닌가. 각 회사들이 채용면접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가를 생각하면, 입퇴사가 잦다는 말은 그 사람이 각각의 회사에서 적어도 '인정'은 받았다는 말이다.
나도 현 직장에 옮긴 지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내가 들어왔을 때를 기점으로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참 많이도 새로운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다. 그 과정에서 먼저 회사를 오래 다녔지만 신임 CEO분의 방향과 맞지 않았던 오래된 분들이 한 차례 교체되었다. 그러고 나니 비슷한, 내용은 조금 다른 팀으로 바뀌어 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팀을 새롭게 꾸리며 조직을 다져나가면서 사람이 불안정하던 때를 지나, 회사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완전히 오래 다녔거나, 아니면 입사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거나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밀려들어온 경력직들이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는 과정을 셀 수도 없이 목격해야만 했다.
경력직 채용에 대한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의미는 '전 직장의 경험을 살려 현 직장에서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거나, 더 낫게 개선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적응기간만 조금 거치고 나면 특별한 교육 없이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를 바라는 이른바 '검증된 선수'자격으로 입사한 것이다.
그런 경력직들이 새로운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입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다른 직장으로 다시 나가는 일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이런 일은 스포츠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분명 전 소속팀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던 선수였는데 이적 후 적응 실패로 다시 원 소속팀으로 돌아가거나,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축구에서는 '전술을 타는 선수'라는 표현을 쓰는 것처럼 그 경력직 분들이 '보편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퇴사의 이유를 일방적으로 직원들에게 몰아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회사가 충분히 그 직원에게 알맞은 업무를 배정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다른 요인으로 직원 만족도가 낮아 성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환경이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보편적 경험이 없는 직원이 문제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예전에 IT팀에 한국의 빅네임인 네카라쿠배의 어딘가에서 오신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업무에서 무언가 막힐 때마다 "예전 직장에선 안 그랬는데 여기는 이런 거 없어요?"라거나, "다른 데 다 이렇게 해요, 여기가 이상한 거잖아요. 일을 왜 이렇게 해요?"라는 소리를 내시는 분이었고, 다른 직원들이 그래서 협업을 많이 꺼리셨다.
그분도 많이 답답하셨을 것이다. IT대기업에 비해 어딘가 하나 나사 빠진 ERP시스템, 아날로그에 의존하는 업무 방식 등 지금 직장은 좀 구시대의 유물이 많다. 그런 환경에서 그분이 쌓아온 '성공 공식'은 먹힐 수 없었고, 그분도 경력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시점에 결국 환경을 핑계로 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분은 퇴사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상태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지금의 직장에 다니기까지 여러 번 다른 회사를 거쳐 봤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회사의 본질은 딱 한 가지다. 그 회사가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윤이 남는 가격에 팔아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비영리법인이 아닌 이상에야, 이는 너무 당연한 기조다. 그게 작은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든, 고도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이든 간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팀원들에게 이 회사의 특이한 점은 그것대로 남겨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본질과 원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항상 강조한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지금, 지금은 행복하나 언제 어디서 좋은 기회가 나올지는 모르는 일인데 회사의 특화된 인재가 되면, 이른바 전술 타는 선수가 되면 이적이 굉장히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회사마다 파는 물건은 달라도, 함께 일하는 방법은 솔직한 말로 크게 다르기 어렵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하는 차이는 있어도 결국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력직은 자신이 그동안 익힌 성공 공식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새로운 조직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해,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나아가면서 생기는 보편적 경험을 충실히 쌓아나가야만 미래의 경력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경력이 쌓인다는 건, 결국 수많은 ‘조금 다름’을 견디고 조율했던 시간들의 총합이다. 그런데 그 다름을 ‘틀림’이라 여기는 순간, 경력은 무거운 납처럼 마음에 달려 자신을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
이제 어느덧 사무실 4년 차의 고인 물(?)로서, 나도 회사의 화석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경험을 현 직장에 녹여내어 새로운, 그리고 또 다른 나만의 보편적 경험치를 한층 더 쌓아 올렸다. 만약 지금 주변에 적응을 힘들어하는 새로 온 경력직이 있다면, 그에게 한 마디를 건네 보자. 요새 많이 달라서 힘드시냐는 말로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