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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이를 응급실로 데려간 때를 추억하며

둘째 아이부터 생기는 경험자로서의 여유

by Karel Jo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전날 구미공장에서 출장 온 동료 직원과 가벼운 반주를 하고 늦게 들어와 곤히 잠들어 있던 내 방에 아내가 화급히 나를 깨웠다.


"둘째 열이 38.5도야, 해열제 먹이는 것 좀 도와줘"


새벽 4시 반쯤, 출근을 위해 일어날 시간까지는 아직 두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거실에 나가 보니 둘째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달려왔고, 아이는 뜨거웠다. 아내를 도와 해열제를 먹이고 다시 잘 자라고 인사한 뒤에, 다음날 아침 열이 조금 떨어진 걸 보고 출근하면서 문득 예전에 첫째 아이가 아팠던 때가 생각났다.




아마 첫째가 7개월쯤 되는 시기였을 때, 저녁에 갑자기 열이 39도까지 오른 적이 있었다. 아내와 나는 저녁때만 해도 웃으면서 잘 기어 다니며 놀던 아이가 갑자기 축 처진 채로 웃음소리가 사라진 모습을 보며 몹시 당황스럽고 놀랐다. 체온계에 찍힌 숫자를 보고 집에 있는 해열제를 일단 먹여봤지만 아이의 입은 약을 거부하며 토해냈고, 우리는 패닉에 빠졌다.


주변 소아과나 내과도 이미 병원 문을 닫은 지 오래, 이따금씩 경련도 하는 것 같은 딸을 보며 더 고민할 일은 없던 우리는 그 발로 바로 응급실로 내달렸다. 그마저도 그때가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년 말인가 그랬으니 응급실에 아이를 안 받아주는 병원도 있었고, 간신히 찾아간 3차 병원에서는 보호자 1인만 응급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증상은 아내가 제일 잘 알지만, 이럴 때는 또 외국인이라는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별 수 없이 의사와의 소통을 위해 나는 아내의 말을 꼼꼼히 받아 적고 응급실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7개월 아이와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응급실에서 그런 갓난아이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건 굉장히 드물다. 소아과 전공의가 당직을 서는 행운이 있지 않고서야 기본 검사인 엑스레이와 피검사 정도를 먼저 해볼 수밖에 없는데,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한 번쯤 다 경험해 본 일이겠지만 그 작은 아이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피도 뽑고, 차가운 엑스레이 기계 위에 놓고 검사하는 광경을 보면 마음이 찢어지면서도, 제발 별 일이 없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고열만으로는 병원에서도 해줄 수 있는 게 딱히 없고 주사를 놓을 수도 없는 환경이라 일단은 약을 타서 집으로 귀가하게 된다. 그때의 우리도,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단지 병원 진료를 봤고, 이상이 없으니 약만 어떻게든 먹이면 된다라는 '심리적 안정감'만을 얻은 것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놓였던 적이 있다.




그 이후에 해열제 종류가 이부프로펜 계열이니,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이니 하는 것과 교차복용법, 그리고 바이러스의 종류나 흔히 걸리는 병 등 아이를 위한 공부를 하게 되면서,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의 병명과 성장과정에 대해 기본 지식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둘째를 갖게 된 지금에야, 이미 첫째 아이 때 한 번 그래도 겪어 보았다고 웬만한 증상이나 고열에는 별 반응 없이 차분하게 대응하게 된다. 지금도 이런 일이 생기면 혹시 예방접종 후 증상이 뒤늦게 오는지, 아니면 돌발진이라고 봐야 할지 아이의 성장 시기와 의심되는 이유를 스스로 생각하고, 집에 갖춰진 각종 해열제를 교차복용 시켜보며 최대한 병원을 늦춰 본다. 다른 증상이 없이 열만 있다면, 병원에서도 특별히 손쓸 방법이 지금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며칠 뒤 둘째 아이의 열이 내리고 괜찮아지면, 부모로서 우리는 또 한 단계 단단해지고 성장하게 될 것이다. 아이도 처음이 아니고 부모도 처음이 아니니, 우리는 계속해서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서로 간의 유대감을 더 끈끈히 이어가며 살아가게 되는,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을 거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두 아이와,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함께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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