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매진하는 모든 어머니를 응원하며
매월 이맘때쯤, 내가 퇴근하고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마른 빨래를 개고 있을 무렵이면, 아내는 살며시 내 옆에 다가와 앉아 핸드폰을 두어 번 보다가 슬쩍 넌지시 내게 물어보곤 한다.
"우리 이번 주말에는 코스트코에 갈까?"
나는 보통 아내가 그렇개 물어올 때, 특별한 일이 그 주에 있지 않고서는 아내에게 그렇게 답하곤 한다. 주말에 가면 사람이 너무 많아 제대로 볼 시간도 여유도 없을 테니 괜찮으니까 주말 말고, 금요일이나 다른 날에 휴가를 쓸 테니 평일에 가자고.
예전에 안산에 살 때는 가장 가까운 코스트코가 광명이든 용인이든 차로 꽤 가야 하는 거리였기 때문에, 비슷한 창고형 매장인 트레이더스를 갔다. 그러나 두어 번 트레이더스를 방문한 아내는 곧 특별히 흥미를 보이지 못하고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용인으로 이사온 뒤 코스트코가 가까워지자 그 곳은 정기적으로 이렇게 가자는 말을 하곤 한다.
말은 그렇게 해도, 우리는 정작 코스트코에서 남들처럼 많은 물건을 사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쇼핑 카트에 대용량 연어나 통고기들이 수북히 쌓여 있거나, 각기 다른 냉동식품들을 빼곡히 담는 등 카트를 꽉꽉 채워담는 동안 우리는 매번 적당한 크기의 다짐육이나 햄, 치즈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부피의 물건을 담을 뿐이었다.
사실, 나는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 같은 창고형 매장이든, 롯데마트나 이마트든 하는 마트형 매장의 차이를 그렇게 크게 느끼지 못한다. 내게 있어 장을 보는 그런 장소는 언제나 어느 때나 북적이고, 내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 정도로 귓가에 파고드는 무언가의 할인 소리, 카트들끼리 부딪치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 그저 힘든 장소일 뿐이다.
그런 나에 비해 아내는 유독 코스트코를 좋아한다. 무슨 물건이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높이 쌓인 공간들 속에 놓인 수없이 많은 물건, 그리고 사람. 그 작은 곳에서 평소라면 볼 수 없는 작은 인연들을 스쳐보내며 아내는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는 모양이다.
그렇게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면서도 이곳을 찾는 걸 보면, 평소라면 그저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와 함께 평화롭게 산책하기만 하여 느낄 수 없는 자유와 소통의 공기를 이곳에서는 아직 자신이 이런 큰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시식코너의 아주머니가 외국인인 아내를 보며 살갑게 시식을 건네면서 아기가 너무 예쁘다고 칭찬할 때, 화장품 두 개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두 개를 다 넣을 때, 별 거 아닌 시간이지만, 아마도 이렇게 코스트코에서 쇼핑을 한다는 건 아내에게 있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과정일 거다.
지금은 잠시 아이를 키우는 주양육자의 입장이기에 잠시 떠나온 그 사회에, 자기가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음을 주지시키는 그런 시간일 것이다. 어머니이기에 앞서, 아내 자신의 자유인으로서.
햄과 치즈, 그리고 빵과 간단한 화장품 두어 개를 담아 얼마 걸리지도 않은 계산을 마치고 나오면 아내의 얼굴 표정은 들어올 때보다는 좀더 풀어져 있다. 특별한 것을 사지 않아도, 그저 오늘 하루도 사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 자신이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는 아내를 보며 나는 말했다.
"다음엔, 코스트코 갔다가 이케아도 들리자. 오랜만에 미트볼도 좀 사고"
거대한 창고는 코스트코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 창고 안에서 아내가 세상의 중심을 느낄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우리는 그 곳에서 자유를 같이 만나볼 것이다. 장을 보는 행위는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시간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즐거운 작은 일탈의 시간이다. 카트에 채워지는 것은 물건이 아닌 우리의 자유에 대한 만족감.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코스트코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