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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든 머리카락에 반비례하는 마음의 풍성함

부쩍 늘어난 어린아이의 잔소리

by Karel Jo


나는 20대의 절반 정도를 유럽의 체코에서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하며 보냈다. 내 직장 경력 중 건강보험 기록에서 사라진, 한국에서는 무직자였던 그 시절의 나는 굉장히 풍성한 머릿결을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매번 이발을 할 때마다 숱이 너무 많아 길이를 마치면 숱가위로 정리해야 할 정도로, 탈모는 나에게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로 집에 잠시 돌아와 쉬고 있던 나에게 어머니가 무심히 한 마디 던지셨다.


"아들 머리가 좀 빠졌나?"


그때의 나는 20대가 무슨 탈모냐며, 머리를 오랜만에 한국에서 깎아서 그런 거겠지 하고 웃어넘겼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나는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제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다. 내 머리는 회복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빠지고 있고, 색깔도 점점 하얗게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석회수로 유명한 경수의 나라 체코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은 좋은 핑곗거리다. 하지만 탈모의 기본은 유전에서 오는 걸 생각하면, 결국 내가 86년생이라는 나이에 비해 빠른 탈모가 왔던 건 유전적인 영향이 가장 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처음 탈모를 깨닫고 내가 제일 먼저 본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그러나 두 분 모두 모발이 얇다고는 해도 나이를 감안할 때 탈모가 심하다고 볼 수는 없는 분이었다. 대를 거슬러 가서 외할아버지를 생각해도, 어릴 때 찾아뵈었을 때 머리가 없는 느낌은 아니셨다.


그때의 나는 유전적 문제는 아니기를 바랐기에 상당히 필사적이었는데,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그 마음을 접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돌아가셨기에 내 기억에 거의 없는 그분의 사진엔 아버지와 달리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더 이상 유전자에 풍성한 모발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 이후부터, 나는 어쩐지 굳이 이걸 붙잡아야 할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무엇보다 생성이 아니라 지연, 잘해야 유지라는 점은 언젠가 받아들여야 할 미래를 억지로 거부하는 느낌이 들어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했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선택은 치료를 하는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탈모를 방치하고 있다.




내가 탈모를 방치하는 이유는 순리를 늦추는 것도 있겠지만, 탈모로 인해 특별히 내가 잃는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빠지는 머리와 달리, 다른 곳들에서는 더 강하게 기승을 부리며 내 자신의 호르몬을 뽐내는 중인데, 자라야 할 곳이 아닌 곳에서 위세를 부리는 수염과 털을 보고 있노라면 내 몸조차 내 의지가 아님에 가끔은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자랑할 만한 외관은 아니지만 분명 머리가 없었을 때보다는 있었을 때가 좀 더 낫긴 했을 것이다. 스타일링을 할 수 있다는 선택지가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지 변신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감히 머리에 손을 댈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의외로 내 스스로도 빠지는 머리를 지켜보며 그렇게까지 자신감이 떨어지지는 않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내 마음과 정신은 빠지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따라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고, 단단하며, 풍성해지는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남들에 비해 다양한 경험을 조금 일찍 겪고 있는 나에겐, 매일 새로운 일들이 정형화되는 그 시간들 속에서 스스로가 한 겹씩 더 쌓이는 게 느껴진다. 그 시간의 흐름에 아마도 내 머리는 그 속도를 따라오기엔 그저 버거울 따름인가 보다.


거울을 보거나 가끔 사진으로 비치는 내 머리의 빛은, 그만큼 내 삶의 빛이 더 충만해지는 과정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며 나는 앞으로도 지금의 내 모습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유명한 손정의 님의 말처럼, 머리카락이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나은 삶으로 빠르게 전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끔 아내와 이야기하며 만약 내가 머리가 다 빠져버리면 어떻겠냐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는 매번 똑같은 말을 하곤 한다.


"우리 집 남자들은 원래 머리 없어. 그리고 머리가 없다고 네가 아닌 건 아니니까 너무 스트레스만 받지 마."


아내의 이 말은 언제나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하지만 요새 나를 더 웃게 하는 건 거기에 보태는 첫째 아이의 한마디다. 어제저녁, 소파에 누워 쉬고 있던 내 옆에 쪼르르 달려와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그 아이는 내게 말했다.


"아빠 머리 빠지고 하얗게 되면 할아버지 되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라~"


어린아이가 스트레스가 뭔지 알고 그런 말을 할까. 이런 순간도, 소파에 일어난 뒤 남겨진 몇 올의 머리카락과 함께 내 마음 안에 또 다른 빛으로 저장된다. 내 마음은 오늘도 잔뜩 풍성해져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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