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들을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
최근 마음이 어지러운 일이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어지럽다 하여 꼭 좋지 않은 일은 아니고, 그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회사 일로는 동료 몇 명이 일시에 퇴사를 결심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겪고 있고, 집안에는 18개월 된 둘째가 뒤늦은 돌발진을 겪으며 며칠 우리의 밤잠을 달아나게 해 주었다.
사람이 감당 못할 정도로 빠른 변화 속에 놓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발목이 묶이며 주저앉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나 또한 너무 많은 일이 한 번에 밀려들어오니 감당이 되지 않는 순간이 있었고, 그때마다 눈을 감으며 그저 이 순간이 다시 눈을 뜨면 끝나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몇 번이고 좌절해야 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불과 일이 년 전에 마음이 힘든 때를 생각하면, 이런 힘듦을 흐르는 눈물로 지새우던 나날과 달리 그래도 다시 버티고 금방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단단함을 다시 세우게 된 점이다. 그리고 그 버팀목은, 틀림없이 내가 죽죽 써 내려가고 있는 내 마음에 담긴 이 이야기들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전 20대 중반, 체코에서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하던 때의 유명한 SNS는 페이스북이었다. 그리고 나는 페이스북의 페이지에 퇴근 후 하루의 공상을 담은 Kronika, 영어로는 chronicle 인 연대기를 쓰고 있었는데, 특별한 내용을 담은 건 아니고 그때그때의 일기나 수기에 가까운 글이었다.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모두 날아간 게 사뭇 아쉬운 일이지만 내용으로 보면 사실 굉장히 어둡기 짝이 없는 글이었다. 예를 들어 기억해 보자면 이런 문장들이었다.
퇴근길에 흔들리는 가로수 불빛을 바라보며 운전대를 잡고 내달려온 도로의 끝에, 주차된 차에서 빠져나온 공기는 사뭇 무겁다. 마치 네 자리가 있지만 너의 자리가 아니라는 듯이 깜박이는 헤드라이트의 불빛은 오늘따라 유난스럽다.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도 없었던 이방인의 삶에 힘들어하는 나는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분명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삶은 필사적이지만 무기력했고, 그렇게 하루에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박함에 빠져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때의 글과 지금의 글은 조금 다르다. 그때는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던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었다면, 지금은 멀어질 것만 같은 마음을 붙잡아두는 끈 달린 화살촉으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어느 쪽이든 확실한 건, 좋은 글을 상정하고 쓰는 글은 아니라는 거겠지만.
좋은 글쓰기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글이란 보통 사람에게 읽힐 것을 기대하고 쓰는 걸 감안해 볼 때, 흔히 좋은 글쓰기라는 말은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거나, 멋진 미사여구나 한 줄의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미루어보면, 브런치에 백여 편이 넘게 써 내려간 지금의 내 글이나, 예전 페이스북에도 올렸던 수십 편의 글들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글은 아니다. 문장 구조 같은 걸 생각하지도, 멋들어진 표현이나 통렬한 주제의식을 담은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글은 예나 지금이나, 그저 지금의 내 마음을 주워 담아낸 마대자루와 같다.
그러나 단지 그런 글을 죽죽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꼭 박힌 글자 하나하나를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조각난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글의 본질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함이 아닌 내 안에 누구도 들어주지 않은 나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함이다.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고.
브런치를 시작한 뒤로 나는 주변으로부터 예전보다 여유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다시 삶은 무채색에서 조금씩 색을 찾아가고 있고, 어설픈 입꼬리가 가끔은 나도 모르게 올라가 "오늘, 꽤 행복하네"라고 무심결에 말하기도 한다. 기분이 좋은 날이든, 좋지 않은 날이든 내 안의 언어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렇게 점점 흐트러짐을 바로잡는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다른 언어를 지니고 있기에, 나는 앞으로도 내 안의 언어를 계속해서 다듬어 나갈 것이다. 여전히 정돈되지 않은 어조로, 그저 스스로를 돌아볼 뿐 끝이 엉성한 그런 글들이 잔뜩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또한 앙상한 나의 마음의 소리이며, 누군가에겐 위로와 공감의 빛일 수도 있다.
글은, 그렇게 언제나 우리의 희망이자 불빛이기에. 잘 쓰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앞으로도 나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