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점심값이 갈수록 무서워지는 요즘
2011년부터 직장 생활을 했으니 햇수로도 족히 15년이 되어가고 있다. 벌써 정규 교육과정만큼은 이미 훌쩍 뛰어넘어 학생이었던 시절보다 직장인이었던 시간이 더 오래되었고, 대학교 입학이 20년 전 일이라는 사실은 어느새 이렇게 멀리 왔나, 싶을 정도로 세월의 흐름을 체감하게 해 주곤 한다.
어떻게 15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직장 생활을 버틸 만한 낙이 뭐였을까?
흔히 친구나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오는 주제들인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자는 단연코 매월 들어오는 월급에서 오는 금융치료를 위해서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일이 별로여도 다 사람 보고 다니는 거라고, 사람이 즐거우면 그럭저럭 회사도 다니는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다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직장인에게 가장 힐링이 되는 시간이라고 하면 역시 '점심시간'일 것이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숫자와 씨름하다가 사무실 바깥의 시원한 공기를 쐬면서 '오늘 점심은 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만큼은, 복잡한 일을 잊고 몹시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하루의 몇 안 되는 순간이기에.
다만, 이 점심을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면 점심 메뉴를 직접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다. '오늘 메뉴는 뭐지?'에서 '오늘은 뭘 먹지?'라는 질문으로 바뀌는 순간, 점심시간은 행복한 고민에서 마치 오랜 기간 동안 사귀어 권태에 빠진 연인들처럼 금세 식어버리고 만다. 팀 단위 식사라면 더더욱이나.
흔한 대화 아닌가.
"뭐 먹고 싶어?"에 따라붙는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점심값이라도 비싸지 않다면 모르겠지만, 서울 기준으로 식당에서 괜찮게 나온다는 음식점들이 가면 족히 12천 원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예전 직장이 역삼동이었을 때는 그래도 그 정도면 됐는데, 여의도로 와 보니 이제는 15천 원은 생각해야 할 판이다.
이러다 보니 그 어려운 결정을 해 놓고, 비싸고 맛없는 밥을 먹으면 그날 하루는 기분이 하루 종일 좋지 않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맛집 리스트가 공유되고 잘 되는 집만 끊임없이 잘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럴 때, 직장인들은 머릿속에 다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급식을 먹을 때가 편했다는.
학생일 때 학교에서 급식을 먹든,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메뉴를 해결하든 그때는 순수하게 맛있는 반찬이 나오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가격적인 부담이 적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미 정해진 메뉴를 놓고 맛있으면 먹고, 맛없으면 다른 걸 택하면 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적기 때문에 순수하게 식단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선택지가 두세 가지 정도일 때는 고민을 즐거워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를 주면 원래 포기하고 마는 법이기에,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벌써 점심메뉴를 '고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15년 직장생활 중 대부분은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에 다녔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으로서 공장이 있는 곳을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사옥이 없어도 지식재산센터 같이 구내식당이 갖춰진 곳에 사무실이 있던 행운이 따랐기 때문이었다. 다만, 현 직장에서부터는 특별히 사옥도 없고, 식당이 있는 건물도 아닌지라 매일 '오늘 뭐 먹지?'의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점심을 원래 잘 먹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어른이 돼서도 급식을 먹어온 나도 요즘 들어서는 급식이 몹시도 그리울 때가 있다. 여의도의 비싼 점심값도 부담이지만, 매일 메뉴를 골라야 하는 팀원들의 모습도 때로 안쓰럽기도 하다. 자기들끼리 좋아서 고르는 거긴 하다만, 그래도 정해진 게 있으면 좀 더 편하지 않을까.
대통령이 바뀐 뒤로 정부에서 반값 점심을 추진하려 한다는 뉴스를 봤던 적이 있다. 사실, 반값 점심보다 대강 사무실 근교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일 식수 2천 명 정도의 규모를 띤 구내식당을 짓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평일에는 주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주말에는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는 일자별로 메뉴가 달라지는 한식뷔페 같은 장소라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오늘의 점심메뉴를 회사 총무팀에서 매일 지정해서 운영해 준다든지, 이것도 어쩌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봐야 할까? 이렇게, 직장인은 급식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선택의 자유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