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만으로는 부족했던 시간들, 일관된 소통과 믿음이 만들어낸 변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인사팀으로부터 끊임없이 듣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단순한 안부인사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속의 핵심을 찔러오는 '요새 어떻게 지내요?'라는 질문이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외국계 회사의 특성상 인사팀과의 면담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1시간 정도 공식적으로 시간을 잡아 정기적으로 하는 면담도 있지만, 그저 잠시 지나가다가 캐주얼하게, 얘기가 좀 더 길어질 것 같고 깊은 내용이 오가야 할 내용이면 자연스럽게 면담으로 대화가 전환되게 된다. 면담의 주제는, 앞서 말했듯이 팀의 사기, 다른 말로 분위기가 어떻냐는 것.
인사팀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나는 정말 별 의미 없이 안부를 묻는 거라고 말씀하시고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한숨 쉰 게 안 좋아 보였나? 아니면 팀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아 보이나?' 단순한 인사가 아닌, 무언의 체크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며 팀 분위기와 경청, 그리고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분위기가 좋은 팀'이란 건 과연 어떤 것일까? 단순히 구성원들 간에 서로 웃음꽃이 피어나질 줄 모르고,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팀이 분위기가 좋은 팀일까? 대체적으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구성원 모두가 합심해서 얼른 끝내자는 환경이 조성되면, 어려운 일이라고 해도 다 같이 해낸다는 성취감에서 해 볼만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분위기가 좋은 팀은, 팀원들 사이에서 '일관성 있는 대화'가 가능할 때 그 팀은 분위기가 좋은 팀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리더십 교육이나 팀장 교육을 하면 중간관리자들에게 수없이 '경청'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말을 많이 하는 리더가 아닌, 듣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많은 리더들은 그래서 들으려고 노력한다. 어떤 문제나 고민이 발생하여 팀원들이 그 고민을 상담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잡아 문의해 오면, 최선을 다해 그 고민을 들어주는 데 주력한다. 또한, 자기 경험을 빗대어, 또는 리더로서 자기 위치에서 조율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 방안도 제시해 주며, 그 고민을 직원의 입장에서 해소하기 위해서도 노력하시는 분도 있다.
그 정도만 되어도 팀을 이끄는 중간관리자로서 꽤 괜찮게 노력하고 있는 편이라 봐야 할 것이다. 대다수의 관리자들이 듣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듣기만 하면 되고 해결은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더가 아무리 경청하려 애써도, 경청만으로 팀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관된, 구체적인, 그리고 반복적으로' 실천한 대화의 축적이 서로에게 신뢰로 이어질 때, 팀 내에서 구성원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마음껏 풀어내도 서로가 오해하지 않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나눌 수 있다는 신뢰관계가 쌓였을 때 비로소 우리는, '분위기 좋은 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초보 팀장으로서 우울증이 극심해졌을 때의 나는, 분위기 좋은 팀은 일을 힘들게 하지 않는 팀이라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나눠서 할 게 아니라, 워라밸을 중시하는 현대의 트렌드에 맞게 팀원들이 힘들이지 않고 배워나가며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멋대로 생각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건 내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버거움이었고,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에게는 여력이 없으니 나는 점점 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팀원들은 나의 눈치만 보는 날이 몇 달이고 지속되었던 적이 있다. 듣기는 하지만, 그렇게 대화는 점점 오히려 줄어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팀원들에게 감사한 점은, 그런 나에게 한 명씩 따로 1대 1로 이야기하면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 워라밸만 따지는 건 아니라고. 다 같이 성장하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합심해서 나를 믿고 말해줬던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비록 우울증으로 힘들어할지라도, 언젠가 이겨낸 후에 본인들 목소리를 외면하지는 않을 거라는 마지막 믿음 같은 게 있었던 것이리라. 믿음이 있는 곳에 행동이 없을 수는 없으니, 나는 그때부터 나를 내려놓고 내 자신의 일관성을 되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여, 이제는 사내에서도 팀 분위기가 좋기로는 다른 팀들도 인정하는 그런 조직을 만들 수 있었다.
결국, 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리더가 얼마나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도 흘려듣지 않으며 반복해서 대화하고, 말과 행동에 일관성을 가져가는 일을 연속적으로 잘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경청은 시작이지만, 진심 어린 응답과 행동이 쌓인다면, 무너진 분위기는 언젠가 틀림없이 좋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