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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남자와 고소한 여자, 우리 가정의 맛

어머니에게 배운 집안일로 완성한 다문화 식탁

by Karel Jo


내가 어릴 적부터, 어머니는 꽤 열려 있는 사람이셨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전히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권리가 그렇게 높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앞으로 사회가 더 발전되고 할수록, 남자도 집안일을 할 줄 알아야 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우리 집은 자연스럽게 누나들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나를 데리고 시장을 보러 가거나 음식의 간을 맞추는 것을 알려 주시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교육을 통해 가르쳐주신 생존 기술은, 내가 20대 중반 체코에서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할 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자취 생활을, 그것도 해외에서 몇 년간 하면서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틀림없이 어릴 적부터 쌓아온 집안일 스킬이 있었기 때문임은 믿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게 쌓인 생존 스킬은 이후 내 결혼생활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지식과 경험을 동반한 채 나는 그렇게 준비된 일등 신랑감이 되어, 아내를 맞을 만반의 대비를 해둔 상태였다. 물론,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닿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가 된 이후로도 꽤 오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지만.




다문화가정이 다른 일반적인 가정에 비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무엇일까? 또는, 올바른 다문화가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다문화가정의 장점은, 다른 나라의 문화가 서로 한 곳에 모여 조화롭게 새로운 문화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한쪽에 치우쳐 동화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과 같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꾸리는 것처럼.


우크라이나는 이전 글에서도 몇 번 다루었지만, 아직 키이우 이외의 지방도시에서는 우리나라의 90년대 정도의 문화가 더 우세한 나라다. 여자들은 20대 중반이 되면 이미 결혼을 했어야 할 부모님의 근심거리가 되고, 남자가 집안일을 돕는다는 것은 크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내는 내가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가정적인 남자임에 굉장히 안도했고,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 언제나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가정적인 모습을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때는 아마도 식사를 준비하는 때가 아닐까 싶다. 열심히 분리수거를 구분하여 제때 쓰레기를 버린다거나, 화장실 바닥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도, 또는 건조기에서 말려져 나온 산더미 같은 빨래를 빠르게 차곡차곡 개는 것도 틀림없이 훌륭한 집안일 스킬이겠지만, 역시 집안일의 꽃은 요리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와 아내의 식탁은 이제는 몹시 풍요롭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7천 킬로미터씩 떨어진 두 나라에서 온 우리 둘의 식탁은, 거리의 아득함만큼이나 요리의 방향성도 같지 않았다. 정통 한국식 요리는 아내에게 너무 매웠고, 정통 우크라이나식 요리는 내가 꼭 사흘에 한 번은 컵라면을 먹으며 매움 레벨을 채워야 할 정도로 각자의 식탁은 조화롭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었다.


각자의 요리를 처음 먹었을 때 우리는 비록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서로의 음식을 외면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와 아내는 일종의 타협을 한 내용이 있다. 가급적 서로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레시피를 개량해 같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을 맞춰 보자고. 그렇게 나는 고춧가루와 마늘을 조금 덜 사용하게 되었고, 아내는 마요네즈를 덜 쓰게 되었다.


몇 달에 걸쳐 서로의 양념 레벨을 맞춰나가다 보니, 어느새 적응되어 내가 먼저 마요네즈가 듬뿍 들어간 샐러드를 먹거나, 아내가 매운 닭발을 원하는 날도 생기곤 했다. 그렇게 우리 집만의 맛을 만들어내다 보니, 요리를 통해 사랑의 레벨도 점점 올라가게 되는 느낌도 들었다.




예전에는 한국 음식을 먹고 싶으면 내가 요리를 하고, 우크라이나 요리를 먹고 싶으면 아내가 요리를 하는 등 어느 식탁을 택하냐에 따라 요리에 대한 가사분담이 명확했었다. 그러나 우리 가정의 맛을 새롭게 만들어낸 이상, 우리는 더 이상 요리를 누가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고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는 사이가 되었다.


새삼, 어릴 때 어머니가 그 당시의 시대상에 맞춰 나에게 집안일을 가르쳐주지 않으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 지금의 현실이 굉장히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처럼 안정되고 조화로운 결혼 생활을 누리기까지 더 많은 시간과 충돌을 겪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미래의 내 딸들이 맞이할 그 시대상은 아마도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시대든 간에 다른 두 사람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삶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입맛을 헤아리며 조화를 만들어가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에게 그랬듯, 나와 아내도 아이들에게 '우리 가정의 맛'을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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