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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마음의 피난처, 제주도를 가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그 마음 그대로인 그곳

by Karel Jo


아내와 처음 결혼했을 때, 우리는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사실, 나는 아내를 만나기 전에 결혼에 대해 생각할 때부터 마음 속에 저장해둔 신혼여행지가 있었다. 그 곳은 바로 몰디브였는데, 돈이 얼마가 드는 지 신경쓰지 않고 최고급 풀빌라를 빌려 일주일 동안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바닷가 옆에서 마음껏 쉬고 오는 것만 생각했다. 물론 반짝이는 밤 해변 사진에 심취해 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러나 우크라이나인 아내와 국제결혼을 하게 되면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딫쳤는데 그건 바로 비자였다. 운 좋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전 세계를 다니면서 여행비자라는 걸 별로 신경 써 본 적이 없던 나에 비해, 아내가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나라는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은 당연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고, 우리나라에서 휴양지로 유명한 동남아시아 국가들 또한 우크라이나인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대부분의 EU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90일 무비자를 열어주기는 했지만 문제는 나 또한 체코에서 20대 중반을 보낸 사람. 갈 만한 유럽 국가는 이미 한 바퀴 다 돌아본 상태였고 딱히 신혼여행을 유럽에서 보내겠다는 상상 같은 건 해 본 적이 잆었다. 결국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딫쳐 신혼여행지를 바꿀 수밖에 없었는데, 그 장소는 다름아닌 제주도였다.




물론, 나라고 제주도를 자주 가 본 것은 아니었다. 내 기억으로도 제주도는 내가 20대 초반, 군대를 제대한 뒤에 가족여행으로 한 번 정도 가본 게 아마 다였다. 그리고 아내에게 제주도는 당연히 한국에서는 꼭 가봐야 하는 장소였기에, 여러 사정으로 가장 최선의 장소가 되었다. 1월에 결혼한 우리였기에 신혼여행지를 제주도로 바꾸고 나니 여행비 예산이 급격히 감소하게 됐고, 남는 예산을 우리는 모두 호텔에 투자해 그 유명한 신라호텔로 신혼여행을 가게 된다.


추운 겨울날에 산이 없는 나라에서 온 아내에게 겨울 제주도는 그렇게 많은 걸 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감귤체험도 해 보고, 해안도로로 매일 드라이브도 다니고, 밤이 되면 호텔 밖의 산책로를 걸어다니며 했던 기억이 아내에겐 온전히 좋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휴가철이 되면 아내에게 어디 가고 싶은 데가 있냐 물으면, 자연스럽게 아내는 “제주도에 가자”라고 말하게 되었다.


첫째 딸을 낳고 나서도 제주도에 가는 것은 변함이 없었는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년~21년을 제외하곤 우리는 매년 그렇게 제주도에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제주도는 방문하기 전까지는 참 작은 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갈 때마다 들르지 못한 곳만 잔뜩 남겨놓은 채로 ‘다음에 오면 여기 가보자’라는 말을 뒤로 하고 다시 본토로 돌아오게 된다.




이번에 둘째를 낳고 어느덧 아이가 18개월이 되어가는 시점, 사실 올해는 여름 휴가를 특별히 멀리 갈 수 없으니 가까운 서해안 펜션이나 잡아야 하나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펜션 가격을 보고 나와 아내는 생각을 바꿨다. 뭘 어떻게 해도 그 돈이면 차라리 제주도에 가는게 합리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던 비싼 여행비용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올해 여름휴가도 또 제주도로 떠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제주도를 매년 방문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라산 정상을 가보지 못했고, 한라산은 커녕 성산일출봉도 올라가 본 적이 없다. 땅콩으로 이름을 날리는 우도는 배를 무서워하는 아내 덕분에 항구 근처에도 갈 일이 없고, 그렇게 제주도는 우리에게 아직도 수많은 미방문지를 남겨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쉬러 가는 것조차 뭔가 마음 편하지 않고 준비해야 할 게 태산인 지금, 확실히 우리가 아이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체감하게 된다. 그래도 부디, 다녀온 뒤에 마음에 조금의 여유와 내년을 기약하는 추억이 조금이라도 생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나 여행은 기꺼이 내 시간을 사는 즐거운 시간이기에, 우리는 오늘 들뜬 마음으로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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