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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이 될 만한 어른에 대한 고찰

나는 누군가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가

by Karel Jo


사람들의 잦은 퇴사와 직원만족도 조사결과가 나오고, 소소하게 이런저런 일들이 몰려오니 정말 요새는 눈 코 뜰 새 없이 일한다는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만큼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루의 반나절을 그저 회의로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며, 생각이 정리되지 못해 브런치 앱조차 잡지 못하고 버스에서 기절잠이라도 자는 날들이 많았다.


사실, 지금의 바쁨에 가장 불필요하면서 필요한 일은 직원만족도 조사에 따른 후속조치일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올해의 만족도 조사는 높을 것 같지 않았고, 결과는 상대적으로 더 참담했다. 예상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최악의 만족도를 받은 우리 조직은, 외부에서 보기엔 대체 이 점수로 왜 회사를 출근하는지를 의심해 봐야 하는 수준이다.


조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리더에 대한 신뢰 문제였는데, 여러 가지로 풀어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적절한 표현은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조직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많은 말로 예시를 보여 줘도, 결론적으로 이는 그 리더가 조직의 모범이 되는 사람은 아니고, 조직 구성원들이 그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라는 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나 스스로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리더가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을 며칠간 했다. 예전의 직장 생활에서 내가 지금의 중간관리자가 아닌 평범한 사원이었을 때, 인격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분들은 꼭 있었던 것 같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자면, 모범이 될 만한 분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았다.


비판하되 비난하지 않고 해결책을 더 중시한다

책임을 져야 할 때 그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 않는다

실수를 권장하고, 일어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법을 더 중시한다


다만, 이런 분들이 사교적이고 착한 분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정다감하지 않고 무뚝뚝한 분들도 있었고, 직원들의 일상생활에 한 부분도 신경 쓰지 않고 네 알아서 하라는 분들도 있었다. 아마 비유하자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의 모습에 가깝지 않나 싶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견뎌냄에 여념이 없는, 그러나 그 짓눌림을 어딘가에 나누려 하지는 않는 고독한 어른.


직원 중 한 명과 이야기하다 그런 말이 나왔다. 자기도 존경할 수 있는 리더의 밑에서 일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직속 팀장인 내가 아닌 내 위를 빗대어 한 말이긴 했지만, 나 스스로도 그 말에 대한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꼈다. 분명 나 자신도, 예전 직장에서 인격적으로 본받을 만한 선임들과 일하면서 많은 걸 배워왔고 지금 그럴 수 없음에 불평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모범이 될만한 존재가 되어야 할 그런 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년이면 만으로도 40, 회사에서도 팀장이라는 입장.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럼 스스로가 얼마나 모범이 되는 삶을 보이는가, 내가 과거에 존경했던 분들의 발자취는 따라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반드시 착한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착각했던 때를 넘어선 지금, 최근의 여러 일들은 나를 잠시 또 멈춰 서게 하고 돌아보게 만들었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모범이 될 만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을 더 다듬어야 한다는 결론이 머릿속을 맴돌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여전히 행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지. 귀와 눈을 열고 언제나 경청하며,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채로. 모범이 될 생각을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비난만 당하지 않아도 다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곧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고, 일에서 잠시 벗어나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들도 접어내고 다시 글에 조금은 더 몰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부디 오늘도, 무사히 흘려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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