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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친구 네가 점점 멀어져만 간다

빈도가 줄어도 농도는 더 짙어지기에

by Karel Jo


나에게는 정말 친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고작 한 명뿐이라고?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개중에는 내가 그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 걸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심으로 언제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굳은 믿음으로 기꺼이 만났을 때 즐거운 사람은 그 녀석 하나인 것 같다.


우리의 첫 만남은 시계를 20년도 더 멀리 앞으로 돌려야 한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2년, 월드컵의 열기로 전국이 뜨거웠던 여름 그가 대구에서 안산으로 전학을 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키에, 안경을 끼고 누가 봐도 공부하게 생긴 모범생 같은 숫기 없는 모습으로 옆반에.


당시 안산은 다른 지역과 달리 고등학교 진학이 비평준화였다. 시내에서 그래도 중상급 정도 되는 학교였는데, 나는 그 학교가 바로 내가 살던 아파트 앞에 있었기 때문에 고민 없이 성적을 신경 쓰지 않고 그 학교에 갔다. 모름지기, 회사도 학교도 집과 가까워야 좋은 법 아니겠는가.


서로를 본격적으로 인지하게 된 건 그 친구가 전학 온 지 얼마 안돼서 치른 수능 모의고사 결과였다. 1학년 때의 모의고사가 뭐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렇다고 해서 전학생이 전교 1등을 가져갔다는 게 아무 반향이 없을 일은 아니었다. 그 친구의 담임선생님은 당장에 우뚝 선 콧대를 자랑했고, 내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기존 재학생들은 체면을 좀 구긴 상태가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재학생의 명예를 걸고 1등을 탈환해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해 말 11월 모의고사에서 나는 기어이 뺏어오긴 했지만,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은 없다. 어쨌든 그 모의고사 이후로 우리는 라이벌이자 친한 친구로 점점 발전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이 서로 달랐지만,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도 죽 만남을 어렵지 않게 이어갈 수 있었다. 대학교에 마음 맞는 친구들이 없으면 언제나 집으로 돌아와 집 앞 호프집에서 밤새 술을 마시고, 군대 제대 후에도, 졸업 후 잠시 내가 해외생활을 하다 돌아올 때에도.


그 아파트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서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긴 했지만, 어쨌든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의 생활패턴이 꽤 비슷했다. 내가 해외에서 외노자 생활하던 시절 그 친구는 고시준비를 하고 있었고, 귀국 이후로는 서로 둘 다 회사에서 재무회계 관련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서로의 대화주제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결혼도, 아이도 내가 먼저 하긴 했지만 회사에서의 커리어가 비슷하니, 우리는 만나도 언제나 과거의 추억만을 뜯어먹지 않고, 새로운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이렇게 서로의 예전만을 추억하는 게 아닌, 현재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용인으로 이사 온 후부터는 만남이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내가 두 딸의 아빠라는 사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어쨌든 집 근처에서 잠깐이라도 나와 볼 수 있던 거리와 달리 작정하고 만나야 하는, 같은 경기도니 멀다고 볼 수 없지만 가깝다고도 얘기할 수 없는 이 애매한 거리가 벌써 1년이 넘게 그 친구와 나 사이를 막아서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그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보통 아이를 키우고 사회에서 잘 나가기 시작할 때 오랜 친구들을 잘 못 만나게 되고, 만나도 서로의 환경이 많이 달라지니 자주 싸우게 되기도 하지만, 나중에 다시 서로의 시간이 맞을 때 언제 만나도 반가워할 수 있는 게 친구니 지금 자주 보지 못한다고 너무 서운해할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당부하셨던 건 서로의 생활수준이나 환경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친구를 대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씀은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본성까지 변하지 말고 잘 살든 못 살든 언제나 초연한 모습을 유지하고 살아가라는 말씀이기도 했는데, 그 친구와 오랜 관계를 가져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된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달에 보자고 한 약속도 급작스레 잡힌 출장에 밀려 또 기약 없는 다음 달이나 언젠가를 약속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서로 각자의 삶이 선명해질수록 점점 더 많은 순간을 함께할 수 없는 건 분명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예전 마음 그대로 근황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 또다시 즐겁게 함께할 수 있는 순간도 오겠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만남의 빈도수는 줄어들지라도, 우정의 농도가 세월의 깊이만큼 더 짙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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