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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마음에도 제각기 빛이 나는 법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

by Karel Jo


2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 임상심리사의 진단 결과에는 기분부전증(Dysthymia)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 현재 상태는 틀림없는 심각한 우울증세로 즉시 약물치료를 권유하나, 근본적인 원인에 자리한 기저의 우울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것이니 상담치료를 통해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 게 좋겠다는 말이었다.


상담 선생님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의 상담치료는 그렇게까지 현재의 결과가 호전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꾸준히 먹어온 알약과 수많은 생각, 그리고 주변에서 믿음으로 기다려 준 시간과 나 자신을 읽어내는 글 속에서 이제는 내 스스로도 하루의 대부분을 절망감으로 보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해 온 나의 만성적 우울이란 친구는 그렇게 쉽사리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요즘도 가끔 마음 한 구석을 파고들며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일이 생길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는 언제나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해온다. '숨기려 하면 숨길 수록, 나를 찾아낼 때의 괴로움은 배가 될 거야'라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만성적인 우울 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내가 주변에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살아오면서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그저 피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았던 때였고. 나는 책임이 없는 사람이었고, 불편한 자리에는 선을 긋고 나를 닫을 수 있었으니까.


조직의 중간관리자가 된 지금, 그리고 한 아내의 남편과 두 딸의 아버지가 된 지금은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좋든 싫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마주쳐야만 하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나는 미숙한 내 자아가 다쳐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저앉고, 힘들어하며, 조각난 자신을 조금이라도 끌어모아 다시 붙여 보려 애쓰던 그런 나날들.


그때 내가 깨닫지 못했던 사실은 내가 반드시 완전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가장 욕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욕심이 많은 거라고. 스스로가 완벽한 사람은 아니니 실수도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실수에 가장 많은 자책을 하고,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채찍질했던 자신이었다.


거기에 근 2년간, 끊임없이 의심받아온 나의 행동은 그 자학을 더 부추겼으니, 우울증에 걸린 게 신기한 일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닐 것이다. 나는 언제라도 우울증에 빠질 수 있었다. 그저 그동안엔 그럴 정도의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 지금도 만성적 우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정서적으로 기분의 척도를 0에서 10으로 잡자면 언제나 1-2 사이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니까. 별 일이 없어도, 즐겁다보다 앞날을 고민하고 있는 그런 사람.




예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더 이상 스스로를 오랜 시간 동안 자학에 빠지게 두려고는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전히 나는 모든 문제의 제1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내가 무언가 더 했다면 생기지 않을 문제였을까를 고민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성향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관성과, 항상성이란 그토록이나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투성이인 나라도, 어딘가 하나 깨져 나가더라도 그 또한 괜찮을 거라는 마음의 힘이 이제는 다시 생겨나가고 있다. 괜찮다고 거짓말하기에 급급하고, 숨기려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비어 있는 나 자신을 향해 비춰오는 빛과 그림자를 믿고,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용기를 갖는다.


최근 회사의 여러 일들 때문에 또다시 자신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기분에 잠겨있어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리 길지 않게 있다 나올 수 있던 걸 보면 스스로도 이제는 갈라진 자신을 목도할 수 있는 온전하고 단단한 정신은 점차적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믿음의 언어는 하나일 것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고, 나 자신을 믿어야 하는 사람 또한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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