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두드리는 악마의 노크
재무회계 분야에서 일하는 직장인에게 있어 월초는 전혀 반갑지 않은 시간이다. 각자가 맡고 있는 직무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결산, 또는 마감이라고 부르는 인류애 떨어지는 시간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마다, 월말부터 결산 준비에 들어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그런 회사들도 있다.
Commercial Finance팀장으로서, 나 또한 8월의 첫날을 맞아 바빠질 걸 대비해 미리 전날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연차휴가를 써서 IFC몰에서 열리는 산리오 캐릭터전인 호텔 플로리아를 관람했다. 겸사겸사, 사무실이 같은 건물에 있으니 회사 동료들에게도 가족들을 소개하고 몸은 힘들었어도, 마음의 충전을 잔뜩 해둔 상태로 결산 준비에 만반의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출근을 위해 일어난 나에게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반갑지 않은 인사를 건넸다.
"너 오늘 출근 못 할 것 같은데?"
엄지발가락 왼쪽 관절 부근에서 뻐근하게 느껴지는, 무언가 안에서 콕콕 쑤시는 그 느낌. 직감적으로 나는 알았다. 통풍이라는 것을. 발가락을 삐거나 나도 모르게 어디가 금이 가거나 한 걸 수도 있겠지만, 이 감각은 분명 통풍이었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집에서 여의도 출근길까지는 족히 두 시간, 버스와 지하철을 타야 하고 단순히 사무실에 걸어가는 걸로 족히 3 천보는 걸어야 한다. 그 시간 동안 이 발가락은 날 서 있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시간은 아침 6시 30분, 일단 사무실을 가든 가지 않든 씻기는 해야 한다. 양치를 하고 얼굴을 씻고, 옷을 입으면서도 발가락 통증을 체크해 본다. 회사 근처에 급성 통풍약을 받을 내과가 있는지, 류마티스 전문병원이 있는지도 찾아본다. 그러나, 점점 발을 딛기도 어려울 정도의 통증이 나를 휘감는다.
7시, 출근을 하고 싶다면 지금 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다. 양재역까지 가는 광역콜버스는 예약제로만 운영되고, 노쇼나 너무 짧은 시간에 취소하면 페널티를 받는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한 번 예약한 버스는 취소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오른쪽 발가락에서 시작한 통풍은 이제 내 온몸을 휘감아 나를 주저앉히며 말했다.
"가긴 어딜 가, 나랑 있자"
7시 10분, 도저히 서 있기도 어려운 지경까지 고통이 오고 나니 출근이 문제가 아니라 집 앞의 내과가 몇 시부터 진료를 시작하는지가 더 중요한 판이 되었다. 다급히 회사에 부득이하게 재택근무로 전환하겠다고 메일을 보내고, 아침에 병원 진료를 보기 전에 미리 결산 때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발가락은 가시 돋친 채찍으로 나를 휘감으며 계속 말을 걸었다.
"대단하다, 아플 텐데 그냥 누워 있지"
출근을 하지 않기로 한 건 옳은 선택이었다. 이미 빨갛게 부어오른 엄지 쪽 관절 부근은 양말을 신기에도 힘들 정도로 아팠고, 급한 일을 대강 마무리하고 나는 운동화를 신기도 힘들어 슬리퍼를 신고 당장 병원 개원시간에 맞춰 선생님을 만나, 급성 통풍약을 받았다. 일단 지금은 검사를 해도 수치가 안 나올 테니, 약을 먹고 괜찮아지시면 혹시 장기적으로 통풍약을 먹어야 할지 보자는 선생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약을 먹으니 소염진통제가 드는지 조금은 아픔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다고 발가락 사이를 마치 쥐 한 마리가 끊임없이 갉아먹는 묘한 기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일 년 반 만에 다시 통풍으로 고생하고 있는 중이다.
흔히 통풍은 맥주를 마셔서 생긴다느니, 등 푸른 생선 때문이라느니 음식 탓을 하기 쉽지만 통풍은 그보다는 더 유전적인 문제, 그리고 환자 본인의 건강 문제가 더 크다. 스트레스를 급격히 받거나 대사량이 떨어지거나 할 때 몸속의 요산을 제때 배출하지 못해 이렇게 한 번씩 우리를 노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만성 통풍이 있었을 때 요산 억제제를 반년 정도 먹었던 일이 있었다. 그 후 한동안 통풍이 오지 않고 몸 상태도 그럭저럭 괜찮은 데다가 스트레스 관리도 좀 된다고 생각하여 끊었던 약이 여지없이 최근 잦았던 야근 + 스트레스가 겹치니 몸이 미리 경고장을 보낸 모양이다.
40살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건강검진에서 보이는 수치보다 몸에서 보내는 메시지가 더 직관적인 나이가 됐다. 기름진 음식에 위가 힘겨워한다든지, 며칠 야근하면 눈가에 터진 실핏줄이 그득하다든지 이제는 정신력만으로 체력을 이길 수 없는 그런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딸아이와, 아내를 위해서라도 좀 더 건강히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매번 하고 있지만 솔직히 지키기 쉽지 않은데, 오랜만에 이렇게 발가락에서 나에게 안부를 물으며 '조금 쉬어'라고 말하니, 반성하며 내 몸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건강이 최우선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