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내가 외국인임을 깨닫는 순간
우크라이나인인 나의 아내는 2018년 11월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먼저 마친 뒤 벌써 7년째 한국에서 나와 함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 사이 연장한 결혼비자만 4번째, 고부열전 출연제의는 셀 수도 없는 새 아이는 어느새 둘이나 나왔으니 이 정도면 성공적으로 한국에 정착한 다문화가정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너무 오래 살았고 간단한 의사소통도 문제가 없다 보니 주변 직장동료나 지인들은 이미 아내가 한국인인 줄 아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직 외국인이라고 말할 때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고 애도 있는데 국적을 주는 게 아니냐고 놀라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다문화 정책에 공을 들이면서도 이중국적에 대해서는 굉장히 배타적인 우리나라는 정전 중인 분단국가라는 특성에서 비롯된 거겠지만 약간 기묘한 점이 많은 나라다. 자국민의 이중국적이야 군복무를 생각해서 그럴 수 있지만,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걸 어렵게 만들어놓을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실, 2~3년에 한 번씩 결혼비자 연장을 해야 한다는 점을 빼면 아내가 외국인으로 사는 게 그렇게 불편한 건 아니다. 세간에서 다문화가정이면 혜택이 많지 않느냐는 선입견과 오해로 바라보는 것만 빼면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내가 한국인이니 복지도 한국인에 준해서 나오고, 이번 소비쿠폰 같은 경우도 결혼이민자는 포함이니 외국인이라고 소외되는 복지도 특별히 없는 셈이다.
아내도 특별히 국적을 의식하고 지내진 않지만, 유일하게 한 번씩 우리가 다문화가정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는 장소가 있다. 그곳은 바로 공항, 공항의 출발장에서 우리의 운명은 그렇게 잠시 엇갈려야만 한다. 국제선이야 서로 다른 나라의 신분으로 가는 거니 그럴 만 하지만, 국내선조차도 구분이 다를 때가 생긴다.
김포공항은 국내선과 국제선이 분리되어 있어 큰 문제가 없다. 우리 가족 모두 탑승권을 갖고 나는 신분증, 아내는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하고 출발장을 통과해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도착하면 된다.
문제는 제주공항에서 다시 김포로 복귀하는 순간. 아마도 김포에서 제주는 내륙 간 이동이지만, 제주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상태에서의 내륙 간 이동이고 국내/국제선이 같이 있어 그런 듯한데 제주공항에선 국내선이어도 외국인과 내국인 출발장이 다르다.
요즘에야 규제가 많이 완화된 것인지, 출발장만 다르지 외국인등록증만 보여줘도 괜찮았는데 예전엔 여권을 같이 요구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여권을 챙겨가야 되냐는 아내의 질문에 제주도는 같은 한국인데 뭔 여권이 필요하냐며 구박했던 나는, 자기 나라 법도 잘 모르는 조심성 없는 남편이 되어 며칠간 눈총을 받았어야 한 적도 있다.
18개월짜리 둘째 딸이 있어 배려받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번 제주도에서 올 때도 외국인 출발장으로 온 가족이 몰려가 아내는 정식 검문을, 딸아이와 나는 옆 샛길로 빠져 절차를 마치는 아내를 기다렸다. 아마, 나중에 둘째도 유치원 갈 때쯤이 되면 동반이 불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혼자 다른 방향으로 나온 아내를 보며 첫째 딸아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엄마는 왜 따로 나와?"라고 물었고, 아내는 딸아이의 볼을 어루만지며 "엄마는 한국인이 아니니까^^"라고 답해 주었다. 아직 국적이라는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은 아이에겐 여전히 헷갈리는 대답이었겠지만, 6살 아이답게 또 금세 잊고 공항을 뛰어다녔다.
예전엔 외국인등록증에 외국인 표현을 Alien이라 표기하고, 공항 출발장에서도 그렇게 표기한 적이 있었다. 아내는 처음에 그 표현을 보고 살짝 불쾌해하긴 했지만 헛웃음을 치며 넘어갔는데, 이제는 에일리언이라는 표현을 없애고 좀 더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많이 바꿔나가고는 있다.
한때는 이런 불편함에서 아내가 귀화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장 간소화된 결혼이민자의 간이귀화라고 해도, 한국 사회에 동화되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면접을 통과해야 하고 서류와 행정절차에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번번이 결심하고 실행하는 데 발목을 잡는 중이다.
특별히 혜택을 바라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잘 살면서 한국 사회에 충분히 동화된 가정에 대해 규제가 어느 정도 완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있다. 이미 '독도는 한국 거'라고 인식이 박히고 사자 보이스에 빠진 외국인 정도면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나와 아내는 서로의 국가에 대한 정체성보다는, 그저 서로이기에 삶을 함께 하고 있으니 언젠가 이런 행정적 문제가 정말 거슬리고 발목을 잡으면 그때는 아내의 외계인 신분을 바꿀지도 모르겠다. 그건 내가 우크라이나에 살아서 비슷한 불편을 겪었어도 반대로 내가 귀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우리는 공항에서야 서로가 다른 나라 사람이었음을 이렇게 의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