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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 아이가? 팔불출 아빠가 되는 시간

뭘 하든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하는 바람

by Karel Jo


내가 아이를 갖기 전에는, 나는 스스로를 굉장히 냉정하고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훈육에 힘써주신 부모님 덕분에 내 스스로의 위치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자신의 강점과 단점, 그리고 달성할 수 없는 한계를 인식하며 내 삶을 그려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가 나중에 아이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극성 부모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으레 생각하곤 했다. 나 자신에게도 높은 점수를 주지 않고 선을 긋는데, 아이의 작은 재능을 부풀려 키워나갈 그런 정도의 호들갑이 과연 나에게 있을까? 때로 그런 질문을 내 마음 안에 품을 때마다, 언제나 답은 그럴 것 같지 않다였다.


그러나 사람이란 언제나 단정 짓고 나면 꼭 그 결론을 깨 버리는 현실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나도 첫 아이가 태어난 직후에는 그렇지 않았다. 뒤집기가 얼마가 빠르든, 말을 벌써 두 돌 전에 하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냥 성장 속도가 조금 다를 뿐이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최근 문득, 조금씩 내 안의 팔불출이 깨어나고 있다.




예전부터 아내와 나는 아이에게 태블릿이나 유튜브 사용을 그렇게 엄격하게 제한하는 편이 아니었다. 편해서도 있지만, 영상 채널만 잘 관리해 준다면 어릴 때부터 제한을 두는 게 마치 내가 어릴 적 부모님들이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우려와 달리 지금은 컴퓨터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듯이, 미래엔 학교에서도 태블릿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굳이 내가 예전의 관습으로 미래를 제한할 건 어쩐지 아니라고 생각했고, 아이는 그래서 키즈 채널을 보며 자랐다. 어차피 정규 티비를 보지 않으니 그게 그거인 셈 치고.


어느 날 그러다 아이가 넷플릭스에서 헌터들이 노래를 부르며 악귀를 퇴치하는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영문을 몰라 아내를 쳐다보는 나를 보고 아내는 요새 넷플릭스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영화가 인기라고 말해 주었다. 덧붙여서, 제목이 네가 들었을 때 어떻게 들릴 줄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잘 만든 콘텐츠라는 말도 함께.


리모컨을 잡기는 하지만 원래부터 채널 선택권이 나에게 있는 건 아니고, 그게 내가 폴드 6을 산 주된 이유기 때문에 나는 아이에게 그걸 틀어주었다. 가끔 아이가 사랑의 하츄핑이랄지, 옥토넛이랄지 긴 영화를 볼 때 끝까지 보지 못하는 집중력을 가진 걸 알기 때문에 이것도 중간에 끊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아이와 함께 끝까지 다 볼 수 있었다.


제목에서 오는 선입견과 달리, 꽤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다. 캐릭터들의 특성도 좋고, 무엇보다 음악과 노래가 정말 잘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이는 그다음 날부터 어딜 갈 때마다 나에게 헌트릭스 노래를 틀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틀어주는 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아이 아버지라면 누구나 자기를 위한 재생목록과 아이를 위한 리스트를 나눠 갖고 있을 것이다. 아이를 통해 아이돌 4세대 노래를 듣기 시작한 나로서는 몹시 익숙한 일이니 문제없이 애니메이션 OST목록을 추가했다.


평소에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원래 아이의 꿈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더 변하는 법이기에 귀담아듣지 않았다. 무엇보다 노래를 그렇게 잘 따라 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노래를 틀어주기 시작하자, 아이는 6살짜리의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발음이 정확한 건 아니어도, 음은 꽤 리듬에 맞춰 따라가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놀란 건 케데헌은 노래가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다. 비록 우리 가족이 다문화가정이고 나와 아내가 영어로 소통하기는 하나, 첫째 딸은 영어에 크게 관심을 보이거나 영어로 말하는 걸 잘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LA해변에 사는 10대 소녀 같은 발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광경을 보니 내 귀와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나윤아, 너 언제 그렇게 노래를 영어로 할 수 있게 됐어?"

"맨날 아빠랑 엄마랑 하잖아~나 한번 더 틀어줘"


그 순간, 내 안에 숨어있던 팔불출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노래에 재능이 있는 건가? 아니면 역시 말은 안 했지만 공들인 이중언어 교육의 성과가 이제야 나오나? 나는 아이의 의외의 행동에, 내 이성과 냉정한 판단을 순간적으로 잃어버렸다.




물론, 이내 다시 냉정함을 되찾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노래를 틀어줬다. 하지만 문득 그러면서 내가 너무 아이의 재능 발굴이나 이런 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나중에 정말 뭘 하든 자기가 행복하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다. 그 직업이 제도권의 법 안에서 문제없다는 가정 하에.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부모라면 보통 그런 생각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나. 그 아이가 최고로 행복했으면이라는 마음보다는, 앞날에 불행이 그리 많지 않았으면 하는, 고점보다 저점이 높아지길 원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미래를 바란다는 걸.


특별히 아직 나와 아내에게 이걸 해보고 싶다거나 아이가 먼저 요구해오지는 않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먼저 아이가 노래를 배우고 싶다거나 그림을 배우고 싶다든지, 최고를 만들겠다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그저 여러 경험을 해보면 된다는 마음으로 지원해 줘야겠다는 것을.


그러다 지금처럼 미래에 이 아이가 걸그룹으로 데뷔한다 하면 어쩌지 하는 급발진 상상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이의 성장을 올바르게 행복한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것도 부모의 특권 아니겠나. 나는 이렇게, 매일 조금씩 아이와 함께 둥글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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