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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 내가 듣지 못했던 아이의 이야기

부모는 자식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기에

by Karel Jo


찌는 듯한 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엄청난 빗줄기가 밤 사이 우리를 강타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바깥에 나가면 찜통기에 있는 듯이 푹푹 머리를 익히는 열기에 금세 사람을 지치게 만들던 하늘이, 무엇이 그렇게 억울해서인지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내는 걸 보면 변덕이 사춘기 소녀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이제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이라기보다는, 기후가 점점 동남아 아열대 기후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장마라고 하면, 일주일 정도의 긴 기간 내내 전국 어디에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그런 광경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동네인데도, 우리 아파트는 비가 내리고 저쪽 아파트에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스콜성 호우를 더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물론, 무더위가 계속되는 날에 이렇게 비가 내리는 건, 홍수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야 언제나 반길 일이다. 아무래도 여름이라 하면 더운 날도 생각되지만, 장맛비 사이를 피해 후다닥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으로 달려가는 광경이라든지, 장맛비 아래에서 느긋하게 어른들은 막걸리 한 잔에 지짐이를 부쳐 먹는 그림도 꽤 어울리는 시간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내가 아이에게 처음으로 나쁜 기억을 안겨 준 그 순간이 떠오른다. 아이의 모든 것이고 세상의 방패였던 내가, 아이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그 순간이.




내가 용인으로 이사 오기 전에, 나는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었다. 안산은 바로 옆에 서해가 있어서 그런지, 이상하게 비도 눈도 그렇게 많이 내리는 곳이 아니었다. 언제나 약간 서해의 짠 바닷바람을 여름이면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살던 2022년의 어느 여름날, 나와 아내와 아직 3살밖에 되지 않던 딸아이는 유모차를 타고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 있었다.


여름에 언제나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은 준비성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예보를 체크했을 때 한두 시간 내로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고, 이미 유모차에 많은 짐을 넣어뒀기 때문에 우리는 우산이나 우비를 챙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과론적으로, 잘못된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곧 바뀔 하늘이 그토록이나 맑았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나오며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고 유모차를 돌려 발걸음을 내딛던 그 순간, 순식간에 주변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는 걸 보았다. 그리고 곧, 새까만 구름 속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본 우리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잰걸음을 내달렸다.


하지만, 비가 조금 더 빨랐다. 금방 하늘을 뒤덮은 빗구름 속에서 강한 빗줄기가 세차게 내려대기 시작했고, 우리 셋은 집 앞 800미터 정도 떨어진 공원의 정자에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나는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금방 그칠 거라며 아이를 감싸 안고 다독여 주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점점 더 거세지는 폭우 아래에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800미터라면 나 혼자서 달려간다면 3분 정도면 충분히 닿을 거리다. 하지만 아이는 떨고 있었고, 유모차와 함께 아무런 막을 것 없이 이 빗속을 뚫고 가는 게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일단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벨트를 강하게 조이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10분만 더 기다려 볼까, 아니면 지금 그냥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할까.


비가 점점 거세지고, 아이는 더욱 무서워하며 울기 시작했다. 이제는 고민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괜찮다고, 아빠가 데려다줄 거라고 말하고 윗도리로 유모차를 덮고 단단히 유모차를 잡은 후 전속력으로 집을 향해 달렸다. 아이는 중간중간 계속 울어댔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집으로 달려 현관으로 들어온 후 아이를 안아주었다. 이제 다 괜찮다고, 우리 집에 도착했다고 말하며 아이를 다독인 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같이 잠들었다.




그 이후 솔직히 나는 그 일을 그렇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이에게는 커다란 기억으로 가슴 한구석에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때때로 비가 세게 오거나 장마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첫째 딸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아빠, 우리 홍수 나는 거야? 홍수 나면 어떡해?"


우리 동네는 홍수 안 난다며 웃어 넘기긴 했지만, 문득 나는 이따금씩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 아이가 유달리 조용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으로 달리는 그 순간 울음을 달래지 못하고 그저 내달렸던 그 조급함이 아이에게는 어쩌면 큰 상처였을까? 나는 아이의 눈앞에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혹시 그때, 많이 무서웠어?"


아이는 나에게 말했다. "비 많이 와서 너무 무서웠어, 그래도 아빠랑 엄마가 있어서 괜찮았는데 많이 울었어. 지금도 비 오면 조금 무서워"


똑똑한 아이지만, 그래봐야 고작 세 살이었고 지금도 다섯 살일 뿐이다. 아직 세상이 무엇인지, 낯설고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로 가득 찬 아이에게 아마도 나의 조급함과, 그날의 어둡고 거친 공기는 아이의 마음 한 구석에 어딘가 '위험한 세상'으로 자리 잡았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새삼 나의 무신경함을 깨닫고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준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나는 그날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최선의 선택이 언제나 후회 없는 결말을 가져온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선의 선택이 언제나 100% 올바르고 좋은 결과를 갖고 온다고도 말할 수 없다. 끝나고 난 후에 진작에 돌아봤어야 할 그 감정을 부모로서 보듬어주지 못했던 나를 되돌아보며, 나는 새삼 아버지로서의 내 위치를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조금 더 자라 유모차 안에서 달리던 그 무서움 안에도 그래도 아빠와 엄마가 같이 있어서 괜찮았다는 좋은 기억으로 그 기억이 뒤덮이기를 바란다. 아이의 세상에, 나는 언제나 커다랗고 단단한 우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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