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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딸의 첫 거짓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은 용서하는 게 아니라 품는 것

by Karel Jo


이제 만으로 다섯 살이 지난 첫째 딸은, 지금 집에 이사 온 후부터 정식으로 자기 혼자만의 독방을 가진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보통은 초등학교나 되어서야 부모와 달리 방을 쓰고 따로 자는 우리나라의 요즘과는 달리, 아내의 단호함 속에 아이는 그렇게 네 살 때부터 각방을 써오고 있다.


물론, 중간에 일어나서는 다시 제 엄마가 자는 안방 구석에 마련된 예비침대로 쪼르르 달려오곤 하지만, 일단 자기 방이라는 공간을 좋아한다는 점, 그리고 기꺼이 잠드는 건 자기 침대에서 잠든다는 점은 나로서는 언제 봐도 꽤 놀라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도 몇 번 다루었지만, 아이를 재우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매일 밤 자기 전 양치가 끝나고 물 한 컵을 마시고 난 후 나는 아이에게 "오늘은 00권이야"라며 읽어줄 책의 권수를 말해주곤 한다.


보통은 내가 말한 것보다 한 권에서 두 권을 더 올려달라 조르지만, 5살 아이도 피곤함이라는 걸 아는지 어떤 날은 내가 읽어주겠다는 권수보다 오히려 적게 말할 때도 있다. '오늘 나 너무 피곤하니까'라는 퇴근한 직장인 같은 멘트와 더불어서.




그런 나날이 지속되어 가는 중에, 이번 주 토요일 밤에 아이에게 약속한 책 네 권을 읽어주고 난 후 나도 모르게 잠시 선잠이 들었다 일어난 후, 아이가 잠든 모습을 확인하고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아내를 보러 거실 식탁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평상시, 나와 아내는 부부간에 제일 중요한 것은 대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피곤하지만 않으면 아이들이 잠든 후 간단히 10분~20분이라도 서로 간의 대화를 자기 전에 나누는 편이다. 아내도 곧 나오겠다는 문자를 받고 간단한 다과거리를 세팅하는 도중, 나는 방문을 열고 이불과 안대를 챙겨 나오는 첫째 아이와 마주쳤다.


"잠들었던 거 아니었니? 왜 나왔어?"


나의 의아한 목소리도 그렇고, 내가 거실에 있을 거라고 아이는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황한 눈빛으로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잠깐 물 마시러 나왔어"


나는 아이에게 아무 말 없이, 물 마시고 오늘은 엄마 방에 가서 자라고 말한 뒤 아내에게도 아이가 갈 거라고 말해주었다. 결국, 그날 우리는 서로 대화를 하지 못했고, 나는 아이가 나에게 처음으로 한 거짓말에 헛웃음을 지으며 잠들어야 했다. 그리고, 문득 나는 내가 처음 어머니에게 했던 거짓말이 떠올랐다.




지금도 기억나는 나의 첫 거짓말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다니던 초등학교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사진관을 하시던 부모님 가게 근처의 빌라로 옮겨 살던 때인지라 나는 보통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부모님 가게에 먼저 들러 잠시 시간을 보내다 누나들이 올 때쯤 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시간이 아니면 부모님과 말할 시간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진관이 잘 되던 때에는 그러나 내가 있어도 아버지는 정신없이 증명사진을 찍으시고, 어머니는 옆에 있는 후지필름 현상기로 사진을 뽑아내시고 계산도 하시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셨다. 그런 때에는 어머니는 으레 천 원짜리 한두 장을 내주시며 간식을 사서 집으로 가라거나, 잠깐 놀다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거짓말을 처음 했던 그 어느 날도 굉장히 바빴던 날이었다. 어머니는 이천 원을 주시며 문방구에서 간식 하나 사 먹고 잠깐 시간을 보내다 오라고 말씀하셨다. 특별히 돈을 남겨 오라고 하시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의 초등학생에게 이천 원은 한 번에 쓰기는 조금 많은 돈이라서, 나는 보통 어머니가 돈을 주셔도 돈을 남겨 드리곤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평소에 뽑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무엇에 홀렸던 것인지, 문방구에서 조악한 열쇠고리 뽑기가 하나에 백 원인가 그랬을 거다. 작은 펜치 모양 고리를 하나 뽑겠다고 천 오백 원어치를 한 번에 털어내자, 나는 문득 어머니가 주신 돈을 다 썼다는 사실에 두려워졌다.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가게로 돌아가 바쁜 게 한숨 가신 어머니가 상기된 표정의 나를 보고는 뭘 먹고 왔냐고 물으셨다.


"쫀드기 사 먹었어요"

"그래? 그러면 돈이 많이 남았겠네, 남은 건 엄마 줘"

"없어요, 전부 다 사 먹었어요"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이천 원어치를 어떻게 먹어, 누가 너 돈 뺏어갔어?!"


어머니의 엄한 말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말하며 우는 것밖에 없었다. 사실은 뽑기가 너무 하고 싶었고, 내가 뽑은 장난감 펜치를 보여드리며 이거 때문에 돈을 다 썼는데 혼날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다고 울면서 말했다.


내가 거짓말을 했던 것보다 불량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더 앞서셨던 모양인지, 어머니께서는 나를 안고 달래시면서 앞으로 거짓말을 하면 그땐 크게 혼낼 거라고 엄하게 말씀하시고는 나와 함께 같이 집으로 가 주셨다.




그 이후로 나는 거짓말을 아예 안 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부모님께 정직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많이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부모가 된다면, 어머니가 날 품으셨던 그때처럼 아이의 마음을 먼저 품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밤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이 오자, 먼저 일어난 아이가 내 방으로 와서 잘 잤냐는 인사를 하며 옆에 누워 뒹굴거리던 중, 아이가 문득 나에게 물어왔다.


"아빠, 근데 어제 나 엄마방 가려고 했을 때 아빠 마주쳤을 때 아빠 어떻게 내가 가려는 거 알았어"

"네가 이불이랑 안대랑 다 가지고 물만 마시러 갈 리가 없잖아. 아빠는 다 알아"

"아... 아빠 미안"


아이는 1996년의 내가 어머니께 죄송함을 느끼며 울었던 것처럼, 내가 다 안다는 말을 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내 품에 안겨왔다. 그리고 나 또한, 어머니께서 내게 해 주셨던 것처럼, 아이를 안고 토닥이며 "괜찮아, 앞으로 대신 아빠랑 엄마,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는 거짓말은 안 하는 거야. 알겠지?"라고 말해 주었다.


아이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마음을 가라앉혔고, 나는 새삼, 어머니의 큰 마음을 떠올리며 내가 조금이라도 그와 비슷해져가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 다시 엷게 미소 지었다.


언젠가, 아이는 나에게 또 다른 거짓말을 해 오겠지만 나는 이제 그 마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처럼 먼저 품에 안을 것이다. 거짓말이란, 꾸짖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안아서 사라지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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