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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까지 키워보니, 셋째는 정말 못 낳겠더라

외동 아내와 삼 남매 남편, 우리가 '셋째'를 포기한 날

by Karel Jo


나는 위로 누나가 2명 있는 삼 남매의 막내다. 족보도 알 수 없는 별 거 없는 집안이지만, 아버지가 3대 독자라는 이유만으로 군대를 조기전역한 걸 생각하면, 나름 대를 알 수 없는 어딘가의 조가 4대 독자라는 사실은 굉장히 명확한 사실이다.


물론, 그런 것 치고 아버지나 어머니는 내가 4대 독자라는 사실을 그렇게 강조하지는 않으셨다. 그리고 특별히 독자라고 해서 삼 남매 중 가장 보호받고 예쁨 받으며 귀하게 컸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욱 체감하기 어려운 것이, 병역법이 바뀌어 3대 독자는 군대를 면제받고 4대 독자는 파주의 낡은 전차대대에 꼬박 2년을 바쳤으니, 솔직히 나 스스로도 독자에 대한 체감은 전혀 없었다.


단지, 남매가 3명이었고 친가도, 외가도 형제관계가 제법 되었기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대가족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버지는 위로 누나만 3분, 즉 내게는 고모가 3분 있었고, 어머니 쪽으로는 외삼촌 2명, 이모 3명 등 명절만 되면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대가족이라고 해서 잘 지내면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 많은 사람들이 형제자매라는 이름 하에 모두가 잘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라오면서 부모님들 사이의 많은 갈등을 지켜본 나로서는, 어릴 때부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으레 갖게 되었다. '나는 나중에, 자식을 그렇게 많이 갖지는 말아야겠다'라고.




그런 나와는 달리, 아내는 외동딸로 자라왔다. 덕분에 아내의 친척들이 모이는 장소를 보면 솔직히 나라면 얼굴도 모를 육촌 이모 같은 관계까지 올라가서 가족 모임을 갖곤 했다. 결혼 전 처음 처가의 모든 식구들이 모였을 때, 할머니가 셋에 이모가 둘이었으니 아내에게 가계도를 물어 그리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서였을까? 아내는 결혼 전부터 아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외동은 싫다고 줄곧 이야기했었다. 대가족 안에서 자란 나는 모르는, 외동으로서 겪는 외로움을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물론, 외동이기 때문에 부족한 것 없이 많은 걸 받고 자란 것도 사실이지만, 아내의 눈에는 그리 잘 지내지도 않는 나와 누나들의 관계가 꽤 부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 배경 속에서, 아이를 몇 명 낳을지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솔직히 한 명 이상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고, 아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한 명은 둘 다 생각하고 있던 시작이기에, 우리는 결혼하고 1년도 되지 않아 소중하고 귀여운 첫째 아이를 가졌다.


결혼 후 첫째를 임신한 것이 불과 반년 후의 일이니 신혼의 즐거움 같은 건 솔직히 별로 즐기지 않은 채로 빠르게 아이를 가진 셈이다. 물론, 그건 그만큼 우리 둘 다 우리 둘만의 시간보다는 우리의 '가정'을 꾸리는 걸 더 중요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처음 아이의 탯줄을 자르고 부모의 감격에 젖어있는 것도 한순간, 육아의 실전은 3년간 우리를 굉장히 정신없게 만들었다. 20대의 체력은 육아를 위한 것이었지 나의 유흥을 위함이 아니었구나를 깨닫는 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 세 살이 지나 아이가 슬슬 말을 하기 시작하고, 대소변을 가리며 사람의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다시 사람다운 삶을 살고 있을 무렵, 어느 날 아내는 첫째의 아기 때 사진을 보며 문득 말했다.


"하나 더 갖고 싶어, 아기가 너무 귀엽잖아."


솔직히,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적지 않게 고민했던 것이, 당시의 나는 37살로 곧 마흔을 앞두고 있던 나이였다. 그리고 이제야 첫째가 사람다운 행동을 하면서 외식도 하고, 비록 만화영화지만 영화관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다시 이 생활을 리셋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본래 아내의 의지를 꺾는 남편이란 2020년대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법. 나는 그렇게, 아내의 뜻을 따라 작년 1월에 둘째를 보았다.




육아에 그런 말이 있다. 이른바 '육아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로, 아이가 둘이면 둘 중 하나만 예민하고 나머지는 그래도 할만하다는 의미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기보다는 둘째 아이는 첫째와 달리 신경을 좀 덜 쓰게 되는 편이기 때문인 것 같기는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둘째는 첫째에 비해 덜 예민했고, 키우는 것 자체는 손이 솔직히 더 많이 가는 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첫째에 비해 나와 아내가 훨씬 나이가 들었고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약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갓난아기를 지나 두 돌을 향해가는 둘째는 이제 첫째와 함께 걷고, 소리 지르며, 간신히 되찾았던 우리의 삶을 또다시 리셋해 버렸다. 우리는 그저 지금 둘째가 사람의 시기에 접어들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루하루 마룻바닥을 치우고, 아이의 입으로 가는 이물질을 막아내며, 예방접종과 영유아 검진을 반복하며 버텨내고 있다.


지인분들 중에는 육아에 돈이 많이 드니 셋째는 아무래도 무리지 않냐, 둘째도 충분히 힘들겠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있지만, 돈의 문제는 아내와 나의 입장에서는 크지 않다. 나나 아내나 특별히 사교육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 요즘의 학원이 일종의 사교의 장이 된 건 알고 있으니 언젠가 아이가 커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싶지만, 솔직히 가성비 있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돈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기력이 그저 미치지 못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둘째가 돌이 되기 전까지는 으레 백일 사진을 보고 아이가 너무 귀엽다며 은연중에 셋째에 대한 농담을 던지던 아내도, 이제는 시큰한 팔목에 감은 아대를 풀 줄 모른 채로 더는 그런 농담을 하지 않는다. 가끔 내가 회사에 자식이 세 명인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그저 엄지를 치켜세운 채로 아무 말없이 존경을 표할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셋째 이야기가 나오면 웃는다. 여전히 아기는 귀엽지만, 귀여움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밤은 또 오고, 아이는 또 운다. 내일도 바닥엔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나 빵가루가 굴러다니고, 아내의 팔엔 여전히 아대가 감겨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건, 아마도 우리가 지금 충분히 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하나씩, 하나씩 치워간다. 아이는 셋이 되면 더 예쁠지 몰라도, 부모로서의 우리는 셋을 감당할 체력도, 여유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제는 확신한다. 둘로 충분하다. 아니, 둘이라도 충분히 벅차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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