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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기분부전증과 바쁜 일상 속에서 다시 나를 마주하기까지

by Karel Jo


다사다난한 시간들이었다. 최근 몇 주 동안,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바쁜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단순히 몇 개의 감사가 몰려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직원만족도에 큰 충격을 받은 회사는 그 조직이 실제로는 충격을 딛고 천천히 일어서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 속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몇 번이고 비슷한 워크샵과 비슷한 논의를 마친 지금에야, 이제는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러나 나는 정작 나를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내 주업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시간들 속에, 하루의 출근부터 퇴근까지 내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이메일을 채 보지도 못하는 때에 사람들은 연이어 내 이름을 찾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팀장님, 팀장님, 저 이거 하나만 봐주세요."

"팀장님, 이 건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팀장님, 이거 견적 제출할 때 원가검토가 좀 필요한데요. 좀 급해요."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바쁜 건 시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내 탓이었다. 내가 어딘가로 몇 번을 불려들어가든, 마치 창구 앞에 번호표를 뽑아 든 민원인들처럼 내 자리는 언제나 문전성시였다. 나는 그렇게, 나 스스로를 하루하루 다시 잃어버려가고 있었다. 마치 파리떼에 뜯어 먹히는 죽은 고기와 같은 나날들.




나는 기분부전증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어두운 장막은, 어느새 나를 완전히 뒤덮어 우울함으로 한껏 끌어내렸던 적이 있었다. 꾸준하게 약을 먹으며, 약을 먹지 않게 된 순간부터는 글을 쓰면서 나는 한때 그 장막을 완전히 걷어내었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찾아오는 불안감과 고독함,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기아감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적어도 자신을 끊임없이 검증해 내고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쟁취하려 달리려고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 주 동안 지속된 피로한 일상에, 나는 그렇게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지난주 금요일부터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기분, 며칠째 끊임없이 반복되는 깊은 어둠에서 허우적거리는 꿈. 아침에 일어나고부터 밤에 잠들기까지 내가 필사적으로 붙잡아야 하는 것은 터지려는 울음을 그저 안으로 머금고 있는 것뿐이었다. 기분을 끌어올리는 것은 사치일 뿐, 나는 내 안에 있는 목소리를 막아내기에도 버거웠다.


만약 누군가가 우울증이란 어떤 느낌이냐는 말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나는 그것이 슬픔이 아닌 지독한 무기력증으로 비유하면 차라리 이해하기 쉽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무기력증은 '하고 싶지 않다'에서 오는 것이 아닌, '할 수 없다'를 간신히 참아내며 어떻게든 해내려 하는 삶의 발버둥에 가깝다. 나는 그렇게 또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가방을 메고, 웃지 못하더라도 나를 그 자리에 앉혀 나라는 사람이 받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위해.


물론, 이것 자체가 삶을 너무 힘들게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노래했던 것처럼, 그 모든 것이 그저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Let it be, 하고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울증은 사람을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 어두운 친구가 주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손가락질한다는 망상, 그리고 기껏 내밀어준 손을 매몰차게 거절하며, 사실은 누구보다도 도움이 필요한 것을 알면서도 그저 고독함 속에 남아있게 되는 나약함이다.


그게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엔 그 고통 안에서 오히려 편안해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마치 우울하지 않으면 무언가 큰일이 날 것만 같이, 행복이란 건 원래의 삶에 마치 없었다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꽁꽁 싸매어,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없는 단단한 가시덤불 속에 끊임없이 상처와 회복을 반복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때가 오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내 나름의 방식대로 써 내려가면서 내 생각을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글들은,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방면으로 공감을 얻으며 위안이 되는 말씀들도 많이 읽어낼 수 있었다.


정녕 내게 있어 글쓰기는 나 스스로를 되찾고 있는 하나의 치유과정이었던 모양이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하루의 마음을 줄줄이 풀어낼 수도 없는 시간들이 계속되자 또 한 번 이렇게 무너져 내린 것을 보면. 솔직히 요 며칠간은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또다시 망가지는 자신의 모습에 더욱 실망하며, 더 많은 절망감 속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이제 적어도 자신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렇게 다시 한번 글을 써 내려가면서 스스로가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아직은 남아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게 더 심해졌으면, 시간이 점점 부족해 또다시 이렇게 나를 들여다볼 시간이 없는 게 지속되었으면 나는 한번 더 수천 개의 조각들로 부서져 내렸을 것이다. 또다시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것이고, 나 자신을 또 잃어버려 이번에 만큼은 한데 다시 모을 수 없을 정도로 갈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비록 요 며칠 나는 또다시 심연의 문턱을 두드릴 뻔했지만, 이렇게 다시 수면 위로 숨 쉬며 올라올 수 있는 시간이라도 허락되었다는 점에 나는 아마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 또 어떤 어려움과 바쁨이 나를 괴롭힐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에도 나는 지금과 같이, '주저앉을 시간'임을 인정하고 내 감정을 묵묵히 토해내며 스스로를 오랫동안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울러,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아마 언젠가도 했던 말인가 싶기도 하지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저버리지만 않는다면, 흔한 말이지만 결국은 이 또한 지나가는 풍파로 남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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