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이유를 담은 발걸음엔 무게가 있다
지하철,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이 지하철의 유무일 것이다. 좀더 포괄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지방과 수도권의 차이는 일상생활에서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느냐로 봐야겠지만, 지하철은 그 이동의 편리함에 정점을 찍는 수단이니 결정적인 차이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지하철의 유무는 순식간에 집값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노선의 이름 같은 건 관계없다. 서울을 빠르게 갈 수 있는 노선이라면 들어오기만 해도 뜨거운 호재로 집값을 치솟아올린다. 신분당선이 그랬고, GTX가 그랬다. 모든 아파트 주변엔 지하철 연장 또는 설치를 기반으로 홍보가 들어간다. 지하철은, 대한민국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시설이다.
그런 편리한 이동수단의 명성에 걸맞게,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지하철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매일 지하철 개찰구 앞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으면, 호선은 다르지만 제각기 같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열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출근길이든 퇴근길이든, 또는 일상 생활 속에서 어느 시간에서든 사람들의 군상은 별반 다르지 않다.
회사를 다니시는 듯해 보이는 분은 그 좁은 지하철 안에서도 출근 전 이메일을 확인하며 벌써 업무를 개시하시는 분도 있다.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그램 피드에 빠져드시는 분도 있다.
가끔, 학생들이 어디론가 현장학습을 떠나는 것인지 교복을 입은 무리들이 지하철 한켠을 차지하는 일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미 사회에 찌들은 어른들 옆에서 아직 순수함을 잃지 않은 그들의 밝음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어도, 아직 내면의 분노를 많이 겪지 못한 더럽혀지지 않은 영혼의 웃음소리다.
또는 지하철 문이 닫힐 무렵, 밖에서 후다다닥 달려와 안으로 어떻게든 비집고 문에 버티어 기대 지하철의 공간효율화를 창출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안쪽에선 누군가는 한숨을 쉬고, 누군가는 짜증을 내며 밀지 말라는 소리가 커진다. 당연하겠지만, 누구도 사과는 없다.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웃음소리, 울음소리, 짜증내는 소리, 온갖 소리가 한데 뒤섞여 달리는 열차 안에서,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좀더 짙은 농도의 숨결과 습기가 뒤덮여 좀더 많은 군상의 소리를 담은 채로 제 갈길을 가게 된다. 그 축축함은, 분명 기분좋은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삶의 무게와 농도가 얼마나 짙은가를 대신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마도 이렇게 각자가 굳이 나눠도 되지 않을 삶의 무게와 이야기를 가장 근접거리에서 부대끼며 느끼면서 하루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편리한 지하철 안에서,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오늘따라 유난히 습하고 뜨거운 지하철 안에서 나는 또 이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원격으로 일할 수 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인원이 지금 이 자리에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아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도, 지하철은 각자의 무게를 담아 무겁게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