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각이 없는 삶이 가능할지를 생각하며

언제쯤이면 삶이 단순해질까

by Karel Jo


내가 살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생각 좀 그만해"일 것이다. 나는, 어떠한 행동이나 말을 하기 전에 그 행동이나 말이 가져올 결과물에 대해 스스로가 충분히 대비되어 있어야 마음이 안심이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중 삼중으로 어떤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나의 삶에서 나의 움직임은 계산된 체스판 위 말의 움직임이다.


이것은 업무를 할 때는 틀림없이 도움이 된다. 특히나 재무회계에서 수익성을 검토하거나, 프로모션의 비용집행 타당성 등을 검토하는 등에서는 더할 나위 없다. 나의 판단은 언제나 경우의 수 한 두 가지를 더해 결과에 대해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토대로 이루어졌고, 내 판단의 결과물은 예측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생각이 많은 것에 이어서, 나는 단어의 사용에 굉장히 엄격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하나를 말하면 그 하나가 말하는 의미에 몹시 확정적인 표현을 쓰곤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용인 집이 시골이라고 표현할 때, 사람들은 흔히 그래도 좋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보통 그럴 때 나의 반응은 "시골인 것과 좋은 것은 별개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얘 또 시작이네'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언제부터 생각이 많았던 걸까? 에 대해서 또 한 번 생각의 나래, 정확하게는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건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나가 노는 대신에 동화책, 전집, 역사책 등 온갖 책을 읽는 걸 더 좋아했던 나는, 나와 대화하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들였다. 친구와는 나눌 수 없는 무한한 정보의 세계, 그 안에서 이뤄지는 사유의 놀이공간. 나에겐 진정 친구가 필요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그가 나를 공격하도록, 때로는 그가 나를 끌어올리도록 주거니 받거니 한 시간도 어느덧 40여 년이 다 되어간다. 오늘, 문득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라고 하면 그 또한 요새 회사에서 부쩍, 직원들을 위해 리더들이 많은 '생각과 배려, 그리고 공감'을 하기 위해 자기 자신들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교육을 자비 없이 투하하기 때문이다.


그런 교육을 하루 종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시는 몇몇 동료들은 힘들어했지만, 나에겐 그저 일상의 생각을 풀어내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평소에도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는 내 성격을 더욱 공고히 하며, 준비가 잘 되었으니 더 이상 생각을 하지 말고 실행에 옮기라는 조언을 듣는다.


요새 부쩍 팀원들도, 아내도, 나의 부모님도 나에게 '생각'을 줄이고 너무 복잡하게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해 준다. 그것은 아마도 옆에서 지켜보기에, 나라는 사람이 충분히 이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생각하는, 고뇌하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 양 생각을 끊이지 않고 반복하는 모습이 걱정되어서도 있을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이 통제 가능한 경우의 수를 찾느라 정작 갉아지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나를 말리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나라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생각이 넘칠 때면 그게 꿈으로도 이어져 하루에도 다섯 번쯤 다른 꿈을 꾸며 밤잠을 온전히 설칠 때도 있다. 그런 날에는 가끔 내 머릿속 어딘가에도 전원 스위치가 있어 생각을 공급하는 발전소를 꺼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생각을 왜 그렇게 많이 하냐에 대한 답을 생각하고, 생각을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시점에서 아마도 그건 이미 글렀다.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기에, 행동에 이유가 있어야 하는 나로서는 생각이 없어질 날은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직급이 올라갈수록 생각을 조금 줄여가야겠다는 생각은 잃지 않고, 실천에는 조금씩 옮겨 보려 한다. 그것은 단순히 누군가의 조언이나 부탁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가 생각할 때도 가끔 나는 사유의 늪에 파묻힌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대신, 그 생각은 계속 브런치에 남겨둘 것이다. 기억과 사유의 작은 저장소처럼, 오늘도 넘쳐나는 생각은 이렇게 이곳에 기록되어 가는 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하철 랩소디, 출근길에 울려퍼지는 우리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