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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본질을 잊어갈 것만 같은 나날들

멤버십 포기와, 바쁜 날들의 단상

by Karel Jo


9월 법인인 회사에 다니다 보니, 그리고 그 회사가 미국에 본사를 둔 회사다 보니 보통 지금 정도의 시기를 두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벌써부터 연말 분위기를 내기 시작한다. 그 연말이라는 말이 뭔가 한 해를 다 보내는 그런 분위기라기보다는, 실적을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목표 달성으로 이끌어 보겠다는 힘겨운 분위기. 보통 그래서 여름의 무더움은, 한층 더 찌는 듯한 공기로 옥죄어 온다.


재무회계팀의 입장에서는 보통 이 시즌에 이제 감사 준비를 하게 된다. 여기서 미국계 회사의 나쁜 점이 나오는데, 연말에 따른 기말감사 준비도 하게 되지만 SoX감사도 병행해야 하고, 안타깝게 운이 나쁜 것인지 하필 내가 있을 때 관세청에서 관세조사가 튀어나왔다. 감사 3개를 받고 있다고 현업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 요새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죽하면 팀원들이 팀장님 자리에 앉아계시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런 나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멀어졌다기보다는 글을 쓸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가 맞겠다. 그래도 하루를 정리하고 시작해 나가던 버스 안에서의 시간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데 여념이 없었고, 조금의 틈이라도 나면 그저 가만히 있는 게 우선시 되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말들이 오가고 나니, 내 안에서는 침묵이 이어졌다.


나의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런치앱은 그러나 꼬박꼬박 내가 시작한 연재 브런치북의 알람을 보내오기 시작한다. 브런치앱은 모든 기능면에서 솔직하게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지만, 글을 써야 한다는 목적의식 자체는 탁월하게 일깨워 준다. 마치 진짜 편집자처럼, 어떻게든 원고를 받아내겠다는 그런 의지의 알림을,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기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글을 쫓기듯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브런치북 연재는 브런치가 야심차게 추진한 멤버십 프로젝트의 시험대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3개의 매거진을 제외한 타로카드 브런치북은, 내가 무언가 주제를 잡고 쓰고 싶은 정리된 소재였고, 마침 멤버십 프로젝트가 열렸으니 거기에 맞춰 시작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아직 한 명의 유료 구독자도 나오지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의 누군가가 내 글을 유료결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막연히 나에게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었던 모양이다. 멤버십 타이틀을 붙이면서 이렇게 아무렇게나 써도 되나? 좀 더 표현이 정갈하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로 완성해서 올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언젠가 그런 말을 팀원들에게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혹시라도 출간을 하거나, 유료 수익이 나게 된다면, 부업이라도 직업이 되는 순간에 나는 무명작가라는 지금을 즐기지 못하게 될 것 같다고.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눈 코 뜰 새 없이 내 주업을 쳐내는 데만 해도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내게, 글쓰기는 어느새 무거운 짐으로 다가와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내 안에서 멤버십을 포기하고, 매거진과 브런치북 연재를 좀 더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의 본질은 내가 겪고 있는 삶을 보다 나답게 풀어내면서,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기 위함이지 이걸로 무언가 수익을 바란다거나 하는 그런 게 아니었기에.


내게 있어 브런치는 예나 지금이나 내 일상에 대한 소통의 장이었고, 가끔 답글을 달아주시는 친절한 동료작가분들과 구독해 주시는 많은 분들에겐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댓글 하나 찬찬히 읽지 못하고 답도 하지 못하는 요새. 그렇게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본질을 다시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여유가 될 때, 내 일상을 공유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그런 행위가 나의 글쓰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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