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아닌 ‘올바른 사람’으로 살아남는 법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선배들로부터 몇 가지 공통적으로 듣게 되는 조언들이 있다. 대부분 그 조언은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항상 발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든지, 자기 자신의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는 것이 이롭다든지 말이다.
그런 태도에 대한 조언 말고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은 역시 대인관계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조언을 꼽으라면 역시 '남을 믿지 말라'거나, '호의를 베풀고 다가오는 사람을 가장 경계해라'같은 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각박한 말이지만, 오랜 경험과 여러 선례로 다져진 채로 구전되어 오는 이 말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우리들에게 통용되어 왔다.
나도 2011년부터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이어가면서, 지금의 다섯 번째 직장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일을 겪어 왔지만, 이 조언들이 관통하는 점은 아마 모든 직장인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진리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바로 '내가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음해하려는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라는 것.
조직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평판'이라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좋은 평판을 유지하는 것이 성공에 있어서 가장 좋은 척도라고 믿고 살아간다. 흔히, 직장에서 친구는 만들지 말아도 적은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둥글게 비호감 없이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사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민주주의의 꽃인 투표를 보더라도, 지지율이라는 이름 하에 매번 전국민적인 인기투표의 결과를 보면 언제나 절반 정도는 그 사람을 지지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나온다. 비호감도의 농도의 문제일 뿐이지, 누구에게나 인기 있는 사람이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맞는 결론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는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팀원들에게서 미움받지 않아야 하는 팀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미움받지 않는 걸 중요시한다기보다는 적어도 그들에게 못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는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바른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이 되려 했었고, 그 결과는 이전 글에서도 몇 번 다뤘다시피 처참한 실패의 결말이었다.
좋은 사람과 올바른 사람의 차이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는 나는 어렴풋이 정의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자기의 가치 기준이 확고한 상태에서 그 기준을 타인에게 설득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좋은 팀장이 되고 싶은 나는 팀원들의 요구사항에 절대 'NO'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이야기를 모으면 반드시 좋은 결론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나였고, 내가 어느 결론을 내든 불만의 소리는 어디에서나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면 안 됐다. 모두에게 가장 올바른 사람이 되었어야 했을 뿐이다.
지금은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이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러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좋은'사람을 포기하게 되다 보니, 누군가가 나를 '음해'하려는 사실 또한 감당해야 하고, 그 음해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나 자신의 기준을 더욱 올바르게 잡아야 한다는 문제 말이다.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팀원 중 한 명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에 걸려, 팀 내에 아기가 있는 직원이 몇 있어 전염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재택근무를 권고했던 적이 있었다. 인사팀 규정을 확인해보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예전에는 팀장 재량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내 선에서 먼저 진행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인사팀과는 잘 풀어서 그 직원의 재택을 당분간 허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인사팀으로부터 그와 비롯해서 내가 하지 않은 악의적인 루머가 제보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내가 팀원들 전부에게 전면 재택을 임의로 시행하려다가 한 소리를 듣고 시무룩해하며 결정을 뒤집고 인사팀에 불평불만을 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나는 인사팀 직원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사람으로 보이냐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문하였고, 그 직원도 나를 잘 아는 사람이었기에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제보가 들어온 이상 면담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람 같은 건 불가능한 일이고, 이렇게 악의적인 공격이라도 당하지 않으면 회사 생활을 잘하고 있는 거라고.
인사팀과의 면담 마지막에 그 소문의 제보자가 누군지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고, 인사팀 또한 나에게 거듭 거짓된 정보로 얘기한 게 혹시라도 기분이 나빴다면 절대 오해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사과를 받았다. 누군가를 탓할 일도 아니기에 괜찮다며 손사래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그때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과거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나의 원칙을 포기했던 그 순간부터 스스로를 잃기 시작했던 때에 내가 착각했던 것은,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모두와 친해지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 설령 미움을 받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선택을 하는 용기가 나를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에피소드가 쌓인다는 것은 내가 점점 회사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이 많아지거나, 음해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여러 일에 노출되고 있다는 거라고도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은 수없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아직 15년 정도는 더 일해야 하고, 더 높은 자리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를 잃지 않고 '올바른 나'를 지켜나가기 위한 지금의 마음가짐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록, 한때의 씁쓸함은 남지만,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닫는 순간 그 또한 흘려보내려 한다. 나를 지키는 삶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지만, 그 길이야말로 결국 나를 올바른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