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2011년부터 시작한 나의 직장생활 중, 나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한국어보다는 외국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환경에서 근무해 왔다. 첫 직장이었던 중소기업을 넘어 체코에 현지채용으로 취업할 때는 체코어, 체코 귀국 후에는 미국계 기업에서, 나의 경력은 대부분 외국계 회사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지금 다니는 직장도, 아시아 HQ인 중국이나, APAC산하의 일본, 호주, 동남아시아와 연관된 일들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쓰며 일하게 된다. 오히려, 영어를 쓰지 않고는 일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애초에 같이 논의해야 할 대상이 외국인인 경우가 많고, 하루에도 네댓 번의 전화회의를 하는 일이 허다하다.
자연스럽게, 팀원들 또한 영어를 기본으로는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들, 좋은 영어성적을 갖고 있지만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영어로 회의하는 게 두렵다'라는 말이다.
영어로 말하는 게 왜 두려울까?
이 말에 대한 당연한 대답은, 말 그대로 두렵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내가 하는 말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우려에서 오는 두려움도 있지만, 상대방의 말을 내가 알아듣지 못함에서 오는 두려움도 있다.
물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정규교과에 다양한 영어교육을 넣어둔 우리나라는, 비록 수능영어의 효용성이 언제나 제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영어의 수준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솔직하게 고등교육을 성실하게 이수한 사람이 영어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건 그 사람이 '영포자'일 확률이 더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루어보면, 상대방 말을 알아듣지 못함에서 오는 두려움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주된 영어의 두려움은 '말'에서 오는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영어를 말하기 두려워하시는 분들은 으레 이런 말을 하며 손사래를 치시곤 한다.
내가 발음이 별로 안 좋아서...뭐라는지 못 알아 들으면 어떡해?
혹시라도 틀리게 말할 수도 있는데 그럼 비웃을거잖아...
차라리 외국인만 있으면 되는데 한국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민망해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럴 때마다 두 가지 질문으로 반문하곤 한다.
과연, 한국어로는 제대로 된 표현을 쓰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외국인들은 안녕하세요만 해도 한국말 잘 한다고 치켜세워주면서, 그 관대함이 왜 자신에게는 없는지?
말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감에서 비롯된 일이니, 자신감을 갖고 틀려도 좋으니 계속 시도하라는 의미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으면 발전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나.
물론, 이런 두려움을 갖는 본질적인 이유가, 영어를 잘 말하지 못함에서 오는 인종차별이나 부끄러운 경험이 있거나, 그런 상황을 어딘가에서 봐 왔기 때문인 이유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식 외의 상황을 두려워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언어는 언제나 발목을 잡을 뿐이다.
친한 동료들이나, 당장 팀원들 중에도 언어에 대한 장벽을 느끼고 여러 모로 두려움을 가지는 직원들이 많이 있다. 더 안타까운 점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치고 자기 업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이미 자신의 업무 영역에 충분히 강점이 있는 사람이지만, 언어에 사로잡혀 자신을 낮추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온다.
나는 분명 어학을 전공했고, 언어적 감각이 남들에 비해 조금은 뛰어난 부분이 있어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게 남들보다는 더 편안하고 어렵지는 않다. 그리고 그건 내가 갖고 있는 틀림없는 강점이지만, 그게 필수요건이냐 물으면 언제나 고개를 저을 것이다.
대학교 때 교수님에게 배웠던 말씀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하나는, 언어란 결코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기 의사를 훌륭하고 미려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분명 중용받겠지만, 결국 내용이 없이 화려한 쪽보다는 내용이 알차고 서툰 표현이 인정받는다는 결에서, 언어 외에도 다른 내실을 다루라는 강조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어에 힘들어하는 모두에게 언제나 말한다. 두려움을 갖지 말고, 자기 자신의 발목을 자유롭게 하여 자신을 갖고 이야기하라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또한, 혹시라도 두려움으로 말을 잇기 힘든 분이 있다면, 용기 내어 말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