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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회사는 육성을 중요시하며 즉시전력을 채용할까

올바른 조직의 역량이 무엇인가에 대해

by Karel Jo


내가 22년 9월에 정식 팀장으로 선임된 지도 어느덧 만으로 꽉 3년이 지났다.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는 솔직히 빨리 올라가면 빨리 내려간다는 이카루스의 날개를 생각하며 자신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생각했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팀장이 매력적이지 않은 자리가 되었다는 걸 깨닫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에.


팀장이 되고 나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고 하면 조직 구성에 대한 책임이 생겼다는 점일 것이다. 기존 인원들의 업무분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현 팀의 적정 인원이 몇 명이냐 하는 이른바 TO싸움에 팀장의 역량이 집중된다. 사실, 실무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팀에 필요한 인원을 벌어 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능력 있는 팀장이라는 생각도 들 정도다.


나는 새로운 TO를 늘릴 정도로 역량 있는 팀장은 아니었다. 초보 팀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적절한 인재를 채용하여 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정도였기에, 내가 주력한 부분은 구성이었다. 당시 팀의 선임이었던 내가 올라간 것이기에 남은 팀원은 나와 비슷한 시니어급 1명, 시니어가 될만한 1명, 그리고 주니어 1명이었다.


당시 회사는 초보 팀장인 나를 위해 나의 손발이 되어줄, 정확히는 나처럼 거침없이 실무를 하며 보다 팀장다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경력직을 채용하길 원했다. 그리고 그때에 내가 택한 것은 신입급 채용이었다. 시니어가 될만한 1인에게 승진 기회를 주고, 주니어를 2명으로 유지하며 순환구조를 이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괜히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듯이, 구성원들 간에 많은 변화가 오고 갔다. 누군가가 휴직이 끝나면 누군가의 휴직이 시작되고, 숨을 돌릴 만하니 사무실도 이전하고 퇴사자도 생겼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퇴사할 지경까지 코너로 몰렸다. 내가 그리고 짜놓은 판을 내가 엎을 거라고 공언할 지경이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또 다른 도전은 팀의 앞에 놓였다. 선임 팀원이 가정사를 이유로 하차했고, 그 자리를 채운 내 의지가 담긴 약간 낮은 연차의 팀원은 수습도 마치지 못하고 서로의 앞길을 달리했다. 마지막 퍼즐을 다시 맞추기 위해, 그렇게 채용이 또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한번 회사와 충돌을 겪었다. 회사는 이번에도 나를 도울 만한 선임급 연차 있는 직원을 채용하길 희망했고, 나는 이번에도 3년 차 정도의 실무에 집중할 수 있는 직원을 원했다. 둘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간극에 며칠간 씨름해야 했고, 결국 실무급이지만 연차가 조금 더 되는 수준으로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회사는 왜 항상 인재육성과 직원의 미래 커리어 발전을 위해 고민한다면서, 왜 채용의 시기가 되면 당장의 현실에 맞춘 맞춤형 해결사를 채용하는 데 주력하는 걸까? 이것은 외국계 회사를 다니고 있다면 좀 더 빈번하고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기조는 육성이지만, 현실은 경력직이 바글바글하다.


나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의 육성에 들이는 시간 동안 업무 효율은 나오지 않고, 그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성과 책임은 고스란히 상사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계에서 실적이 부진한 책임레벨에 대한 평가와 보상은 굉장히 가차 없다. 저번 주에 와서 힘내자고 얘기한 VP가 그대로 쓸려나가는 모습도 흔하다.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백신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반증이, 보통 말은 육성을 강조하지만 사내에 변변한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 직원이 처음 들어와서 거칠 온보딩이나 OJT의 교육 수준이 겉핥기식만도 못한 경우가 많으니, 이미 겪을 대로 겪고 혼자서 알아서 싸워낼 직원이 더 선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매번 채용 때마다 말은 육성과 허리를 만들자고 해놓고 언제나 가슴 언저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계에는 역삼각형 구조가 참 많다. 이것은 최근 한국회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회사의 트렌드일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외국계는 소위 말하는 허리가 끊어진 상태다. 기획과 분석을 하겠다는 역량 있는 사람이 넘쳐나지만 그 일을 뒷받침할 허리가 없다. 자료 구성이 되지 않으니 아웃풋도 그저 그렇다. 그 핑계는 고스란히 회사의 리소스가 부족하다거나 하는 핑계로 이어진다.


나 또한 중간관리자로서 회사의 입장을 완전히 거스를 수 없어 연차를 조금 높인 실무자 채용을 진행 중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기조를 깨기 위해서는 관리자급의 철학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자신만의 경영철학과 운영에 대한 기조를 갖고 있어야 한다. 월급사장이면 어떻고 팀장이면 어떤가, 어쨌든 책임을 지겠다고 앉은 자리지 않나.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많은 회사들은 그렇게 허리를 잃어버리는 채로 부러져 간다. 나 또한 이번까지는 어떻게 버텨냈지만, 점점 그렇게 기득권의 입장에서 잃어버리지 않는 데 주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런 날이 오더라도 나는 지금의 생각을 이렇게 기록하며, 그때에 다시 읽고 다짐을 거두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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