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아이, 그러나 착하기만 한 아이
한국인인 나와 우크라이나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은, 내 예상과 달리 나를 거의 닮지 않았다. 처가에서 볼 때는 나를 많이 닮았다고 이야기하시지만, 우리 쪽에서 볼 때 두 아이는 영락없는 혼혈의 외모 그 자체를 띠고 있다. 매일 보는 나로서는 사실 익숙해진 탓에 혼혈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다가도, 밖에 나가 보면 깨닫게 된다. 내 딸들은, 확실히 순혈 한국인과는 다르게 생겼다고.
꽤 눈에 띄는 외모를 갖고 태어나서인지, 딸들은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사실, 우리 가족 자체가 한눈에 잊기 힘든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라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빠인 나는 전혀 한국적이지 않은 수염을 턱에 달고 다니고, 아내는 전형적인 어두운 금발의 외국인, 그리고 그 사이의 딸들은 예쁘게 태어난 혼혈의 표본과 같은 모습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딜 가나 쉽게 기억되었다. 자주 다니는 소아과도, 어린이집에서도, 유치원에서도, 동네 놀이터에서도, 심지어 마트의 캐셔 아주머니들조차 기억하고 계산대 앞에 있는 간식을 한두 개씩 집어주실 정도였다. 아이는 그렇게 온 주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크고 있었다. 작년 말 새로운 곳으로 이사 왔을 때도, 주변에 이름을 알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관심 어린 나날을 보내고 있는 어느 때에, 나는 유치원 선생님과 전화상담을 통해 약간 우려스러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정확히는, 아이를 통해 먼저 들었는데, 유치원에서 오늘은 뭘 하고 지냈냐는 질문에 이따금씩 아이가 친구들하고 노는데, 남자아이들이 서로 같이 놀고 싶어 해서 팔을 당기다 팔이 아팠다는 말을 하곤 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예쁜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그리고 그래봐야 유치원생이니 뭘 모르고 그랬을 거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가 몇 번을 반복해서 들으니 나는 유치원에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언젠가 학부모 상담이 잡히게 된 날에, 나는 선생님께 혹시 이런 상황이 제가 우려할 만한 상황인지를 여쭈었고,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아버님, 사실 질문을 먼저 하셔서 저희도 조심스러운데. 따님이 굉장히 착해서 거절을 잘 못해요. 제가 봐도 여자아이들하고 놀고 싶어 하는데 남자아이들이 그렇게 얘기할 때 딱 거절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말을 하며 저희도 더 신경 쓰겠다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오히려 유치원이기에 이렇게 보육을 신경을 쓰는 것이지, 학교를 가게 되면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이런 상황을 봐주지 않으실 테니 제가 더 아이 훈육에 힘쓰겠습니다라고 얘기하며 상담을 마무리 짓고, 첫째 딸아이를 불러 '네가 싫은 상황이 오면 정확하게 표현을 해라'라고 얘기해 줬다.
그때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 아빠, 꼭 그럴게."라고 말하긴 했지만, 아이의 심성상 잘 되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걱정을 품고 매일 저녁에 오늘은 유치원에서 어땠냐, 누가 오늘도 너무 짓궂게 놀자고 하지는 않았냐는 질문을 했고, 딸아이는 이제 그런 친구가 많이 없다며 언제나 밝게 웃으며 조잘조잘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던 어제저녁, 오랜만에 하루 연차휴가를 내어 아내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오후에 아이의 하원시간이 되어 비눗방울과 작은 가오리연을 들고 유치원에서 오는 아이를 마중 나갔다. 아이는 마중 나온 나를 보며 기뻐했고, 우리는 그렇게 아파트 단지 안의 놀이터로 향했다.
요즘 반복되는 안 좋은 날들 탓에, 쌓일 대로 쌓인 버거움이 반작용처럼 터진 날이었다. 휴가와 상관없이 틈만 나면 연락이 울리는 회사에 이미 짜증이 난 상태에서, 아이는 내 얼굴을 보고 비눗방울과 연을 놓고 그네를 타러 가겠다고 했다. 내가 그네를 밀어주며 잠시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놀이터에서 아이 또래와 비슷한 애들이 벤치에 둔 비눗방울과 가오리연을 갖고 노는 모습이 보였다.
딸아이는 "아빠 저거 내건데..."라고 이야기했고, 내가 뭐라 한마디 하기 전에 다행히 그 아이들의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우리 거 아니니까 친구에게 같이 해도 되냐고 물어봐야지~"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시점에서 그 어머니의 행동은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나도 아마 내가 그날 짜증이 이미 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하면 너그럽게 같이 놀 수도 있지, 하고 딸아이에게 친구들과 같이 하고 놀아라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휴가 중 회사 일로 기분이 좋지 않았고, 자기가 싫음에도 말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에 나는 화가 났다. 거기에 딸아이 앞에 와서 연신 "해도 돼? 해도 돼?"라고 물어보는 남자아이의 모습은 내 신경을 더 돋웠다. 물론, 행동이 제어가 되는 남자아이 같은 건 없다. 모든 상황은 내가 기분이 평상시와 다를 바 없다면 아무 문제 없이 관용적으로 넘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딸아이의 얼굴에 물어대는 남자아이의 말을 제지한 채 "친구야, 싫대"라고 짧게 끊어 말했고, 도구를 챙겨 다른 놀이터로 가며 딸아이에게 물었다.
"나윤아, 아까 저 친구들이 네 물건 갖고 노는 거 싫었어?"
-응...
"그러면 앞으로는, 네가 싫으면 싫다고 확실하게 얘기해야 해. 소리 질러도 괜찮아.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을 들어주고 할 거지만 너도 학교에 가면 이제 스스로를 얘기하는 법을 배워야지."
-알았어...
딸아이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언제나 아이를 훈육할 때마다 딸아이의 잘못이 없어도 무언가를 가르쳐 줘야 하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내가 여유가 조금이라도 없기 때문에 관용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오는 부가적인 짜증이기에 더더욱이나 그랬다.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서, 다시 사람이 조금 적은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놀고 나니 아이는 괜찮아졌지만, 나는 그렇게 한번 더 미안해졌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 온전하지 않다면 아이는 나의 그릇됨을 보고 자란다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그 표현 그대로, 결국엔 나의 우울도, 나의 짜증도, 모두 아이가 감당하게 된다. 부모의 감정을 견뎌야 하는 것은 아이의 책임이 아니기에, 아이에게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옳은 시선을 전해주려 애쓰지만, 언제나 이렇게 지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회사에서 반복되는 좋지 않은 일들로 인해, 나 자신이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지만, 하나 분명한 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통해 늘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는 것.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에게서 배운다.
아이는, 언제나 나를 보고 자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