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
요 며칠, 신규 인력 채용건으로 인해 회사에서 마찰을 겪으면서 마음의 심란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당장의 현업에 즉시 투입할 수 있을, 특별한 잠재력이나 기획력을 요하지 않는 실무급 수비수를 요구한 나와 달리, 근시일 내로 선임급이 될만한 레벨인 공격수를 생각하는 부분이 상이하여 또 한 번 격동의 시기를 가졌다.
흔히, 건설적인 피드백이나 숙의과정을 거치면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거나, 그렇게 조직과 사회가 발전해 나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런 생산적인 비난이 아닌 비판은, 우리 모두에게 건강한 약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서 간과하는 것은, 약이 몸에 좋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약은 언제나 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맞지 않는 약을 처방했을 때 몸이 망가지는 것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고.
그러니 감정과 기분이 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비난이 아닌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 표명한다 하더라도, 결국 토론은 나와 상대방이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경청하는 척하면서 마지막엔 그래도 나와 뜻이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결론이 모아지도록 유도하는 행위 아니겠는가. 말 끝에 조금씩 베이는 상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마지막엔 어느새 수많은 곳이 다쳐 있다.
그래도 결과라도 좋으면 다행인 일이다. 전투가 끝난 후에 상처 하나 없이 개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당한 얼굴 뒤에 쌓인 생사의 흔적을 밖에서 가늠할 수 없듯이, 나 또한 집에 돌아와서는 특별히 티 내지 않고 그저 "오늘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며 가방을 놓고 소파에 기대앉아 달려드는 아이들을 안아주고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날 밤, 보통 자기 전에 첫째 아이는 내가 책도 몇 권 읽어주고, 공주님답게 팔과 다리도 주물러 주고 아이가 오늘 겪은 이야기의 조잘거림도 들어주며 먼저 꿈나라로 보내 버리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나의 하루도 마무리하는 그날 밤의 한 자락에, 아이가 책을 읽어주는 나를 멈추고는 옆에서 빤히 보며 물었다.
"아빠 오늘 왜 이리 기분이 없어 보여"
-음? 아,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아빠 기운 없어 보여?
"응, 완전, 아빠 힘들어? 힘들면 오늘 책 많이 안 읽어도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아이는 내가 들고 있는 책을 잠시 내려놓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여섯 살, 어느덧 사람의 감정이라는 걸 이해할 나이가 되었구나. 불과 몇 달 전, 감정에 대해 설명한 책을 읽어주며 나에게 기쁨이란 무엇인지, 슬픔이란 무엇인지, 부끄러움은 무슨 말인지 물었던 이 아이가 어느덧 사람을 자기 눈으로 읽어내기 시작했다.
바라보는 아이의 두 눈 속 투명한 걱정의 눈길에 나는 아이의 앞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흘러내릴 뻔한 눈물을 간신히 참아내며 괜찮다고 토닥이고 덮인 책을 다시 들어 끝까지 책을 읽어냈다. 그리고 평상시 루틴대로 아이를 재우고 이불을 덮어준 뒤, 방으로 돌아와 억눌린 슬픔과, 대견함 속에 한참을 그렇게 잠들지 못하고 앉아있어야 했다.
이제 아이가, 그렇게 조금씩 더 자기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고단함을 알아차렸다는 것은, 조금이나마 내 세상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때에 나는, 내가 며칠간 겪은 힘듦이 순간적으로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나도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그토록이나 힘들었는가?'
언젠가 아이가 더 자라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삶이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던 날, 작은 아이의 목소리가 그 무게를 나누어 가졌다는 사실을. 그날 밤, 나는 확실히 알았다. 내 삶의 가장 깊은 위로는 거창한 말이나 화려한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단순한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언젠가 아이가 힘들어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내가 먼저 물을 것이다.
“우리 아이, 힘들어?”
그렇게 묻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삶을 끝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함께 걸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