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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공부는 ‘놀이’였다. 문제는 어른이다

아빠의 눈으로 바라본 선행학습, 그리고 교육의 본질에 대한 고민

by Karel Jo


어느덧 첫째 딸이 내년만 유치원에 가면, 2년 뒤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벌써 정규 교육과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하면서 지나간 세월의 속도에 새삼 놀라며 나이 들어감을 느끼게 된다. 그와 더불어, 이제 곧 점점 이 아이도 교육이라는 걸 받으며 성장하겠구나,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불안감도 생겨 버렸다.


나나 아내나, '학습'이라는 것에 대해 특별히 유난스럽게 챙기지 않았다. 회사 동료가 살고 있는 서울의 어떤 지역에서는 만 2세만 돼도 벌써 뭔가 학습지를 시키고 있다고 하고, 강남에 사시는 예전 과장님은 영어유치원을 가기 위해 시험도 준비하고 그랬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별세계 같은 이야기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아이들을 공부시킬 마음도 없었고.


우리 둘 모두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못 했던 사람이 아니었고, 시험이 끝나면 언제나 시험지를 내 책상에 올려두고 일어나 친구들이 내 답지와 자기 답지를 맞춰보려 했던 그런 사람이었다. 아내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비록 수학은 약했지만, 언어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다. 우리는 공부를 시킬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속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


어렴풋이, 우리는 그저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선행학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결국엔 공부는 머리가 하는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서점에서 사 온 학습지 한 두 권을 풀어보니 딸아이가 꽤 흥미를 느끼고, 학습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했는지 아내가 저녁 시간에 나에게 진지하게 부탁했다.


"나는 한국어를 잘 못 하니까, 당신이 한글과 공부를 좀 봐줬으면 좋겠어. 애가 충분히 잘 따라가고 이해하는 것 같아"


아내는 이런 걸로 나에게 실없는 부탁을 할 사람이 아니다. 나는 주저 없이 그다음 날 퇴근길에 쿠팡으로 5세가 할만한 학습지 순위에 추천 순으로 잡히는 몇 권을 주문했고, 그날 저녁부터 아이와 하루 30분씩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글 쓰기 연습과 관련된 책 한 권과, 숫자와 간단한 덧셈/뺄셈이 있는 책은 아이가 충분히 흥미를 느끼고 재밌어하며, 매일 저녁 내가 말하지 않아도 한글 공부하자, 수학하고 싶어라고 말하며 자기 스스로 책을 가져와 나와 함께 풀어가길 원했다.


물론, 그건 아마도 아빠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아이의 또 다른 놀이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가 모르는 것을 이해하게 하려 해 주고, 즐겁게 익힐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다 모든 책이 끝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나는 약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똑같은 5세가 할만한 학습지라고 해서 구매했지만, 두 학습지 간의 레벨 차이가 너무 달랐던 것이다.


아이가 재밌어하는 수준은 예를 들어 사과 그림이 몇 개 그려진 상태에서 사과를 몇 개 먹으면 몇 개 남을까 같은, 산수를 말과 그림으로 풀어내어 이해시키는 수준이었다면, 어떤 책은 내가 초등학교 1, 2학년에 했을 법한 사칙연산을 주르륵 나열해놓기만 했다.


또 다른 책은, 아직 아이가 이해할 수 없을법한 공간지각력을 요구하는 도형 문제를 풀어놓은 책도 있었다. 같은 5세 이상이라고 적어 놓고 이렇게 수준이 다를 수 있을까? 그보다, 5세를 위한 학습지가 이러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는 이보다 더 어려운 수준을 다룬다는 말일까? 나는 우리나라의 교육 수준에 문득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 의구심은 서점에 가서 1학년 교과서를 보자 더욱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정작 1학년 교과서는 딸이 어려워했던 5세 기준의 학습지보다도 못한 내용으로 단원이 구성되어 있던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만, 1단원의 시작은 숫자를 알아보는 거였다. 그것도 9까지 한자리 수에 대해서만.


이런 상황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 같이 학교 정규 과정은 보통의 속도에 따라 알아서 잘 흘러가게끔 짜여 있는 커리큘럼이 이미 있는데, 굳이 이렇게 예습을 빙자한 선행학습(의 수준도 일부 부모에게는 아니겠지만)을 아이에게 시킬 필요가 있는 걸까? 흥미를 느낀다고는 하지만, 미래에 느낄 흥미를 내가 가져가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리지는 못한 상태로, 어려운 책들은 잠시 덮어둔 채로 대신 나는 아이와 좀 더 즐겁게 놀 수 있는 여러 방법으로 공부를 대신하고 있다. 벽에 그려진 숫자를 빨리 찾는 연습이라든지, 대신 더 많은 동화책을 읽어주며 글자에 대한 감각을 익힌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제 처음 겪은 교육과정의 격차는 앞으로 곧 학부모가 될 나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줬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교육은 내가 겪어왔던 그때보다 더욱 큰 격차와, 더욱 힘든 경쟁을 통해서 변별력을 잡게끔 만들어놨구나 하는 마음에 씁쓸함도 금할 수 없었다.


지금 내게 가장 분명한 생각 하나는, 공부는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기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이가 글자를 배우는 순간이, 문제를 푸는 시간이,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의 호기심을 따라가는 모험이길 바란다.


언젠가는 나도 흔들리고, 욕심이 앞설 때가 오겠지만—

그럴수록 오늘 저녁, 아이가 내 무릎 위에서 수학 문제를 놀이처럼 풀던 그 장면을 기억해내고 싶다.


부디, 아이가 세상을 배워나가는 길 위에 내가 조급함이 아닌 여유로, 강요가 아닌 믿음으로 함께 서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그녀가 공부를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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