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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에게 이빨요정이 처음 찾아온 날

자라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나날

by Karel Jo


어느덧 만으로 다섯 살이 지난 첫째딸은, 이제 내년이 되면 유치원의 마지막 학년이 되고 곧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어린이집에서 아장거리거나 했던 기억이 더욱 선명하지만, 나와 아내가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아이는 벌써 이렇게나 자라버렸다.


다섯 살 쯤 되니 이제 제법 사람 티가 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바깥에 밥을 먹으러 나가도 한 사람 몫을 주문해 줘야 하고, 자기 방에 자기 침대까지 놓고 생활하기도 한다.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이 있거나, 하고 싶은 게임이 있으면 이제 나에게 조를 줄도 안다. 제법, 어느새 우리 큰딸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가 자랐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작은 이벤트가 최근에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첫 이빨이 빠지는 날이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먼 서울에서 용인까지 돌아와 지친 몸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딸아이는 문앞으로 달려와 평소와 달리 슬픈 목소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빠, 나 이빨이 너무 흔들려서 곧 떨어져 나갈것 같아."


나는 가방을 현관에 두고 아이에게 아 해보라는 말과 함께, 금방이라도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흔들리는 아랫니를 볼 수 있었다. 아랫니에 손을 가져다 대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뽑지 말라는 아이의 놀람을 달래주면서 아내를 바라보니, 아내는 이미 내일 치과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영유아 구강검진 외에는 찾아가본 적이 없는 첫 치과 진료에 떠는 아이를 재우고 나와 거실 식탁에서 아내와 자기 전 하루에 대해 서로를 나누던 때, 문득 아내가 내게 지갑에 만 원짜리 한 장이 있냐 물었다.


"We need to give her money from the Tooth Fairy."


생전 처음 들어보는 표현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게 뭐냐고 물었다. 일단 만 원짜리 한 장은 건네준 다음에. 아내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처음으로 유치가 빠지는 날에는, 요정이 나타나 헌 이를 가져가고 새 이를 약간의 돈과 함께 선물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예전에 처음 내가 유치가 빠지던 날이 생각났다. 몇 개는 치과에 가서 뽑기도 했지만, 주로 내 이빨을 뽑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고전적인 방법으로 실을 흔들리는 치아에 칭칭 감아 휙 하고 빼내고 나면, 어머니께서 이빨을 주시며 예전에는 지붕 위로 던지면 까치가 물어갔지만, 지금은 지붕이 없으니 베갯머리에 보관해 두라고 하셨다.


어느덧 아이가 그 때의 나만큼 자라 이제 유치가 하나씩 빠질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잠시 감상에 빠졌다. 몇 번인가 아이가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흐른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인걸까.


성장의 순간은 언제나 이렇게 사소하게 찾아오는 것이리라.


첫 걸음마를 떼던 날, 처음 내 이름을 불러주던 날, 처음 스스로 신발을 묶어 보던 날. 그 모든 순간이 특별하지만, 지나고 나면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 버렸는지 아쉽기만 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이 하나가 빠진 사건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것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깨달았다. 부모라는 존재는 결국 아이가 열어 가는 문 앞에서 조용히 서 있는 사람이다.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이를 잃고, 새 이를 얻으며, 그렇게 세상을 조금씩 넓혀 간다. 나는 그 문 옆에서 까치를 믿던 나와 달리 이빨요정을 믿는 아이의 세계를 스스로 걸어나가기 전까지 잠시 지켜주는 것뿐이다.

오늘 나는 내 딸이 한 걸음 더 커가는 모습을 보았다. 빠진 이 하나가 그녀의 세상에 새로운 창을 열어주었고, 그 창 너머에는 더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문 앞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그래, 이제 너는 조금 더 자랐다. 나는 여전히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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