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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The Sun - 햇살 앞에 선 마음

회복의 끝, 존재 그대로 웃을 수 있는 용기

by Karel Jo


The Sun, 문자 그대로 태양을 상징하는 이 카드는 전통적인 타로카드에서 대부분 '완성'과 '행복'을 상징하는 카드로 그려져 있다. 19번째에 놓여 있는 이 카드는, 어지러운 달빛 아래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지나 극복한 뒤에 찾아오는 생명의 아침을 나타내고 있다. 붉게 빛나는 태양이 으레 상징하는 것처럼, 강인하고, 무한한 잠재력을 우리 앞에 뜨겁게 발산하고 있다. 그 가능성 앞에는, 오롯이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하다.


긍정적으로만 보이는 이 카드가 전하는 진짜 메시지는 그러나 단순한 ‘기쁨’이나 '새로운 시작에 대한 환희'는 아니다. 새롭게 시작되기 이전에, 악마의 유혹에 흔들리고 달빛 아래에서 흔들린, 자기 자신을 충분히 의심하고 깨달아낸, 회복된 이후의 맑음이고, 정직함 끝에 찾아오는 확신이다. 그 성찰의 위에, 스스로는 더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기쁨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뜬 이 태양은 과거의 무너짐을 지워버리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그 무너짐 위에 진짜 나로 선명히 ‘존재하는’ 시작이며, 그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기 위한 기쁨의 환희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햇살은 뜨겁지 않다. 어떤 감정도 억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껴안은 그림자까지를 빛 속에 함께 놓는다. 나의 불안, 나의 연약함, 나의 실패마저도 햇살 아래에서 ‘그랬구나’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순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The Sun이 전하는 회복의 진짜 얼굴이다.


The Sun 카드에 그려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아이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해바라기 앞에서 말갛게 웃고 있다. 아이가 타고 있는 하얀 말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고, 그 뒤에는 커다란 태양이 온 세상을 환히 밝히고 있다. 눈부실 정도로 뜨겁게 타오르지만, 결코 따갑지만은 않은, 따스하고, 평화롭고, 정직한 자애로움으로 아이의 뒤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그 태양 앞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달빛 아래 드러났던 그림자들마저 품은 채, 우리는 자신을 드러낸다.


벌거벗은 아이의 얼굴은 편안함으로 가득하다. 그 편안한 미소는, 이를테면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의 미소다. 별이 회복의 가능성을 속삭였고, 달이 두려움과 그림자를 마주하게 했다면, 태양은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한 우리에게 말한다.


“이제, 살아도 괜찮아.”




스스로의 달빛 아래에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자신의 어두운 감정들을 감추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충분히 행복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주워 담으며, 왜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지에 대해 채찍질하며, 애써 웃고, 애써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아왔다. 괜찮지 않아도, 나는 괜찮았어야 했다. 표면적인 나의 모든 것은, 누군가에게는 이미 충분해 보이는 것이었기에.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긍정은 남들이 보기에 좋도록 억지로 웃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슬픔을 충분히 이해한 끝에 피어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의 아픔도, 나의 기쁨도 온전히 나만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틀에 나를 가두지 않는다. 그냥 내가 좋다고 느끼는 순간에 마음껏 웃고, 기쁘면 기쁜 대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내가, 전보다 훨씬 더 진실하게 느껴진다.


감정에 솔직하게 된다는 말로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최대한 죽이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좋은 나는, 스스로는 아무래도 좋은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나는, 어른으로서 내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고, 언제나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긍정적인 생각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될 수 있을 리 없는 그런 완벽한 나는, 언제나 내가 갖지 못해 동경해 마지않고 아파해야만 하는 닿지 못하는 자신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련을 넘어 햇살 아래에 서 있는 나는, 더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아직도 어딘가 부족하고, 여전히 가끔 울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제 그런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군가의 박수 없이도 웃을 수 있는 것. 누군가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더 이상 ‘누가 나를 어떻게 볼까’보다, ‘나는 지금 이 삶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


때로 그러나 그런 순간들이 또다시 다가올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와서 또다시 감정대로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감정에 솔직한다는 것은 내 감정을 좋을 대로 주변에 흩뿌리고 다닌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은, 감정에 충실하게 주변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 그저 괜찮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다 이 카드를 마주할 때면, 문득 잊고 있던 질문이 떠오른다.


“요즘, 뭐 때문에 웃었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태양 아래 있다. 아무 의미 없이 피어난 미소 하나, 잠깐의 포근한 햇살에 감탄했던 순간, 친구의 농담에 허물없이 웃던 저녁. 그것이 The Sun의 선물이다. 무너짐을 딛고, 혼란을 지나, 우리는 마침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웃음은 절망의 반대말이 아니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희망의 반대말도 아니다. 그 웃음은 단지, ‘지금 나는 살아 있다’는 생의 실감이다.




어둠은 그렇게, 아주 천천히 물러난다. 별빛 아래 울던 밤을 지나, 낯선 감정들과 마주했던 달의 터널을 지나온 지금. 우리는 마침내, 태양을 마주한다. 처음부터 찬란한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확신에 찬 것도,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 순간조차도, 실은 두려움이 지나간 자리 위에 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다. 햇빛은 분명히, 나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아직 그림자 속에 있고, 어떤 사람은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했으며, 어떤 사람은 한참을 햇살 속에서 웃고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같은 하늘 아래 있다.


The Sun은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해 준다. 서로의 빛이 되어주는 존재들,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들. 햇살 아래에서 우리는 결국 연결된다.


나는 더 이상 어둠 속에 있지 않다. 빛이 나를 완전히 감쌌다기보다는, 내가 그 빛을 받아들일 만큼 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햇살이 영원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다시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나는 다시 별을 찾고, 달을 지나, 또다시 태양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그 믿음 하나면, 오늘 하루를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햇살 아래, 조용히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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