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달빛 아래에서 살짝 위험해진다
The Moon. 손에 품은 별빛에 대한 희망을 안고, 다시 주어진 길을 걸어가기로 한 순간에 하늘 위로 떠오른 달은, 바라만 봐도 왠지 알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이게 한다. 그건 설렘일 수도, 슬픔일 수도, 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각일지도 모른다.
달이라는 존재가 언제나 그렇듯, 이 카드 또한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다. 아름답고 고요하면서도 어딘가 불안정하고 낯설다. 어둠 속에서만 떠오르며,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 채, 태양의 흔적을 반사하는 존재. 이 카드가 상징하는 바는 단순한 어둠이 아니다. 그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내면의 그림자, 억눌린 본능, 그리고 무의식의 목소리다.
카드에 그려진 여인은 두 개의 탑 사이로, 강을 건너와 어슴푸레하게 비치는 달빛을 뒤로한 채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것밖에 해 내지 못했냐는 비웃음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는 앞날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그렇게 무모한 결정을 했냐는 조소일 수도 있다. 달은, 그렇게 위험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무너진 탑 아래에서 발견한 별빛을 향해 나아가다 마주한 이 달은, 그 치유의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두려움과 혼돈의 밤이다. 무너진 이후의 공허함은 곧 회복의 가능성으로 이어지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어오는 내면의 불안과 마주하게 된다. 아직 빛이 완전히 닿지 않은 그 중간지대에서, ‘달’은 우리를 초대한다.
스스로 다시 괜찮아지기 위해 약을 먹고, 나 자신의 긍정을 되찾기 위해 나는 별의 속삭임을 들으며, 천천히 나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진 채로도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좋아졌다고, 긍정의 칭찬을 보내주었고 나 자신도 고취된 마음에 내가 이제는 정말 괜찮아졌구나 하고 안심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 그제야 처음 느껴지는 낯선 감정들이 있었다. 내가 애써 외면했던 감정, 존재 자체를 부정했던 나의 어떤 모습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당황했다. 괜찮다고 들었던 그 모든 날들 속에서, 또다시 의문을 가지는 시간이 나를 휘감아왔다. '정말, 이걸로 괜찮아?'라고.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남들의 인정을 받아 가면서, 나 스스로가 긍정적인 거라고 생각한다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건 내가 여전히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 '되어야 하는 나'만을 마주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두려움, 질투, 불안, 자격지심, 그리고 말로 꺼내기조차 어려운 상처들이 숨 쉬고 있었다. 달빛 아래, 나는 처음으로 그런 나와 마주했다. 그리고 알았다. 나에게 가장 큰 공포와, 끊임없이 나를 공격하는 건 외부의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나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는 걸.
그 갈등이 가장 깊어질 때, 우리는 흔히 자기 의심과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강을 건넌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걸까? 사람들은 나를 정말 이해할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조차 알 수 없는 그 순간들.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며 인사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척 하지만 사실 사무실 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대로 무너져 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공허함 속에서 나는 달을 봤다.
달은 직관과 무의식의 세계를 비춘다. 낮에는 볼 수 없는 세계, 이성이 닿지 못하는 감정의 깊은 심연. 그곳에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다. 꿈속처럼 모호하고, 감정처럼 흘러가며, 때론 환상처럼 아름답고, 또 때론 악몽처럼 아프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가짜’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외면해 온 진짜일지도 모른다. 달빛은 그런 감정들을 비추며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 두려움은 정말 너의 것인가, 아니면 남이 만든 그림자에 불과한가?”
여전히 나는 종종 혼란스럽다. 그것은 아마도 '되고 싶은 나'보다 여전히 '되어야 할 나'에 맞춘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감정이 내 감정인지, 타인의 기대에 반응한 감정인지. 내가 바라는 삶인지, 사회가 말하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틀에 맞춘 삶인지. 여전히 나는 정의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카드 앞에서, 삶의 명확함을 잠시 내려놓고, 혼란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건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길이 어디인지 재정의하는 시간’이다. The Moon은 회피가 아니라 직면의 카드다. 무섭고 혼란스러운 그 감정의 실체를 바라보는 용기. 불안정한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직함. 그 밤의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새로운 감각을 가지게 된다.
나는 지금도 불안하다. 밤이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낮이면 여전히 나의 무게에 짓눌린다. 그러다 편하게 잠이라도 자는 날엔, 여지없이 수많은 꿈이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며 달려든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나는 나에게 되묻는다.
“지금 이 감정은 어디서 왔을까?”
“이 두려움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
그 질문이 나를 구한다. 확신 대신 질문을 품는 용기, 바로 그것이 The Moon이 말하는 지혜다.
달빛은 선명하지 않다. 어둡고, 흔들리고, 때론 왜곡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서 혼란스럽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회복은 그런 모호함을 견디는 데서 시작된다. 뚜렷한 답 없이도 하루를 살아내고, 이유 없이 울컥하는 감정을 지나치지 않으며, 혼자만의 질문을 껴안고 살아가는 용기. 그것이 ‘달의 시간’이다.
달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감정은, 너의 일부야. 두려워하지 말고, 너 자신을 전부 안아줘.”
달이 가장 깊은 밤하늘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삶의 표면이 아닌 바닥에 닿는다. 그 바닥이 고통스럽고 외로울 수 있지만, 거기서야 비로소 진짜 나의 소리를 듣게 된다. 달빛 아래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에게 가장 정직해진다. 그 정직함은, 회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한없이 조용하지만 분명한 진실 하나가 남는다.
“지금 이대로의 나도, 괜찮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처음으로 진짜 웃고 싶은 이유를 찾게 된다. 내가 무언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살아 있음 그 자체만으로 느껴지는 기쁨. 그 감정은 아직 낯설지만, 따뜻하다.
어쩌면 해가 뜨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