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짐 끝에 오는 희망을 기대하며
탑이 무너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산산조각 난 채로 땅에 흩어진 벽돌과 잔해, 무너진 마음과 허공을 향해 울리는 침묵만이 그곳을 채운다. ‘탑’은 그렇게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떠난다. 지켜온 체면도, 힘겹게 쌓아올린 구조도, 끝까지 붙들었던 자존심까지도.
처음에는 그 공허함이 무섭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자리에서 내가 이제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나, 나는 무엇으로 나를 설명해야 하나. 그러나 바로 그 자리, 바로 그 순간에 ‘별’은 찾아온다. 아주 작고 조용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카드 속 여인은 얇은 천 하나를 두르고 있다. 밤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여인의 두 손 안에는 밝은 빛 하나를 감싸쥐고 서 있다. 어두운 밤임에도, 은은하게 밝혀진 빛 주위의 풍경은 몹시 뚜렷하다. 그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무너진 탑에서처럼 거대한 감정 폭발이나 외부의 격변도 없다. 별은 소리 없이 말한다. "이제 진짜가 될 시간이다."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다시 뭔가를 쌓으려 한다. 이전의 탑보다 더 단단하고, 더 높게, 더 무너지지 않게. 하지만 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회복을 말한다. ‘쌓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으로.
물이 흐르는 건, 울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드러낸다는 뜻일 수도 있다. 포기하거나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붙들고 있던 모든 것을 스스로 흘려보내는 의식. 땅에 닿는 물은 다시 씨앗을 틔울 것이고, 호수에 흐르는 물은 언젠가 다시 빛을 비출 것이다. 별은 말없이 그렇게 재생을 시작한다. 치유는 그렇게, 조용하게 시작된다.
나는 이 카드 앞에 설 때마다 한 번씩 숨을 멈춘다. 거대한 무너짐을 겪은 후에야 이 카드는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카드는 아픔의 다음 장면이다. 그래서 어떤 위로보다 강하다. ‘힘들었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제 괜찮아질 거야’라는 조용한 속삭임을 준다.
사실 아무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주지 않는다. 괜찮아질 거라고, 충분히 애썼다고, 지금은 잠시 주저앉아도 된다고. 그 대신 세상은 늘 말한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예전처럼 강해져야 한다고, 뭔가를 다시 보여줘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너무 빨리, 아직 제대로 아물지 않은 마음 위에 또다시 무언가를 덧씌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별은 급하지 않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너 그대로 빛나고 있어’
‘회복은 시간이 아니라, 정직함으로 온다’
나는 한때 내 무너짐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적이 있다. 무너졌다는 사실은 패배처럼 느껴졌고, 탑이 무너진 그 자리에 선 나는 ‘실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를 가장 괴롭힌 건 다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었다.
견딜 수 없는 생각들 속에 찾아간 상담센터의 첫 날,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던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임상심리사분의 한 마디였다.
"잘 해오신 거예요. 이미 충분해요."
그 분의 그 한 마디는 나의 별이었다. 별의 노래는 아주 단순하고, 아주 깊다.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지, 내 마음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더는 붙들지 않아도 될 것을 붙잡고 있지는 않은지. 어쩌면 별의 진짜 힘은 정직함이다. 좋은 사람인 척, 괜찮은 사람인 척, 강한 사람인 척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 그 허락은 반드시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 건 아니다.
별은 말한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너는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어.”
그리고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절실한지 안다. 우리는 늘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더 유능해야 하고, 더 친절해야 하고, 더 이겨내야 하고. 하지만 별은 그 모든 “~해야 한다”에서 벗어나 그냥 존재하는 것 자체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이 카드가 희망을 상징하는 이유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지금 이대로의 나에게도 삶은 계속된다는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무너진 뒤에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눈물이 흐른 자리에서 다시 웃을 수 있다는 가능성. 한밤중에도 별은 떠 있고, 그 별은 나를 향해 빛을 준다는 사실.
별은 결국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는 지금, 스스로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탑이 무너지고, 내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은 그 밤 이후, 별이 떠오른다. 그 별은 누구의 허락도 없이 떠오른다. 나는 아직 회복 중이고,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별은 그걸 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야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오늘만큼은 괜찮다고 스스로를 안아주는 순간. 그 순간에, 별은 가장 강하게 빛난다.
별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 지금 이대로도 빛나고 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다시 살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