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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The Tower - 무너져야만 하는 때

모든 것이 무너진 그 자리에서

by Karel Jo


The Tower, 이름에서 이 카드가 주는 이미지는 굳건하게 지어진 요새와 같은 강인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카드를 실제로 펼쳐 보았을 때, 우리에게는 약간은 당황스러운 모습으로, 약간은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내리치는 번개 아래에 이 탑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절제에서 나의 흐름을 찾고, 악마의 그림자와 사슬에 묶인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품은 그 앞에, 철저하게 무너지는 절망감으로 그렇게 탑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The Tower 카드는 파괴의 카드다. 전통적으로 이 카드는 '갑작스러운 붕괴, 예기치 못한 변화, 자아의 해석 또는 재건의 기회'등을 갖는다. 주로 거짓된 신념에 대한 자기기만을 상징하곤 한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번개처럼 내리치는 진실의 앞에 자신이 만들어 낸 모래성 같은 허상을 무너뜨리는 카드다. 그 무너짐은 때로 지독하게 아프지만, 진실된 미래를 위한 재건이라고 볼 수 있다.




3년이라는, 누군가에게는 짧다고도 볼 수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지금의 회사에서 많은 것을 이루어내려 노력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 팀장님을 제외하곤 팀에 어떤 인원도 남아있지 않고, 심지어 당장 출근 다음 주가 결산에 돌입하는 주였는데 모든 자료가 다 날아가 있었다. 팀장님 또한 들어오신 지 1년도 되지 않으신 분이라, '어떻게 되겠지~'라고 말씀하시는 대책이 많지는 않으신 분이었다.


나는 그 무너짐 앞에서 노력했다. 회사에는 있지만 조직에는 없는 체계를 잡아가기 위해 노력하였고, 팀장님께서 그 자리를 나에게 이어 주실 때에는 내 이후로 들어온 사람들은 내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조직에 연속성을 두기 위해 전력질주했다. 거침없이 달려온 내 길에 후진이란 없었고, 그렇게 사람들은 다시 내가 속한 팀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었다.


그러나, 정작 외형을 쌓아 올리는 동안 나는 나를 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보기 좋은 탑을 쌓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던 나와 팀은, 겉보기에는 이제 굉장히 잘 지내는, 행복한 팀이 되었다. 사무실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나는 농담도 잘 받아주는 사람이었으며 원리원칙이 확실한, 선명한 색깔을 가진 합리적인 조직이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그 굳건함이 사실은 모래로 쌓은 허약한 기반 위에 지어진 소꿉장난 같은 성이라는 게 밝혀지기까지는 생각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회사 일에서 오는 갈등과 이해받지 못한다는 무력감, 말하지 못한 채 좋은 팀장으로 남기 위해 내 안에 쌓아둔 분노, 나 자신의 높은 기준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타인을 보는 비난의 시선을 단단히 포장해 온 채로 나를 연기하다 결국에 무너져 내렸다.


견고한 조직으로 포장해 보려고 했지만, 연기를 몇 년이고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 거짓된 '기만'이라는 모래 위에 지어진 그 탑은 그렇게 빨리 지어진 것보다 더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의 안에서 질식해 갔다.


지금도, 그렇게 괜찮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여전히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모든 것이 내 어깨에 걸려 있다는 생각이 들고 모든 것이 나를 향한 비난의 시선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아무도 나만큼 노력하지 않는다고, 나는 더 이상, 이제는 '버틸'수 없다라고.


그런 나에게 탑은 언제나, 스스로가 무너져 내리며 나에게 말해주곤 한다. '이제는 그만해도 괜찮다, 견고한 척 그렇게 버티고 서 있지 말라'라고. 무너짐은 아프다. 혼란스럽고, 낯설고, 때로는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잘 버티는 사람’을 더 좋아하기에, 나는 쉽게 내 붕괴를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무너진 그 날들 속에서 나는 비로소 처음으로, 내 마음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더욱 나를 강하게 다잡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몇 번의 무너짐 속에서만 조금씩 ‘진짜 삶’에 가까워지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이 카드가 두렵다. 이 카드가 나왔다는 것은 아직도 무너져야 할 탑이 내 안에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최근의 힘듦과 지속적으로 이루지 못하는 밤잠이 그를 증명해 내는 것 같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그러나 동시에 이 카드는, 그 무너짐 속에 새로운 가능성의 틈이 있다고 말해준다.


"무너져야만 보이는 하늘이 있다."


그 말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다시 걷게 만든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지금, 당신이 끝까지 지키고 있는 탑은 무엇인가?”

“그 탑이 무너진다면, 당신은 누구로 남게 될까?”


그 대답은 아마, 당신이 아직 무너지지 않은 미래의 탑의 꼭대기에서 조용히 혼자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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