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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The Devil - 우리 마음의 거울

스스로의 의지로 벗어 나와야 하는 유혹

by Karel Jo


14번 카드에서 절제의 조화로움을 배웠다면, 그 빛이 길게 드리운 그림자는 바로 15번 카드, 악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듯, 균형을 추구하는 인간의 삶에는 언제나 불균형을 향한 유혹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악마는 늘 우리 옆에 있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사라지지도 않게.


카드의 이름이 주는 위압감처럼, 악마의 카드를 처음 본 많은 이들은 움찔한다. 어둡고, 위험하고, 불길한 기운이 따라올 것만 같다. 직관적으로, 악마의 명령에 따라 욕망에 굴복한 인간을 드러내는 듯한 그림을 보고 있자면 그 감정은 더욱 깊어진다.


하지만 이 카드가 전하는 진실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누군가 우리를 억압하거나 강제로 묶어둔 게 아니다. 카드 속 남녀가 보여주듯, 목에 걸린 쇠사슬은 느슨하다. 조금만 고개를 숙이면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악마는 외부의 괴물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어”라고 속삭이는 습관과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절제의 조율에서 넘어와, 악마가 마음속에 언제 자리 잡았느냐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 대답은 아마도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자, 나의 의지를 갖되 흐름을 거스르지 말자라고 다짐한 그 마음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건 쉽지 않다. 끊임없이, 내 안의 악마가 속삭이기 때문이다. '지금, 손을 더 강하게 움켜쥐어 보라, 네 안의 욕망을 사로잡아라'라고 유혹적으로 매 순간.


충동이라고 이름 붙이지만 실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원하는 그 모든 욕망과 욕구 앞에 우리는 악마에게 이끌린 듯이 굴복당하고 싶어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과 올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학습에 반항하는, 절제할 수 없는 본능의 외침 같은 것이다. 단순하게 무엇인가를 갖고 싶은 소유욕부터, 부정한 방법이라도 나의 성공과 이득을 위해서라면 성취해내고 싶은 욕망까지, 사람이기에, 그렇게 1분 1초에 흔들린다.


나 또한, 언제나 그런 유혹에 시달려왔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태어나 선함보다는 악함을 좇는 경향이 있다고 믿는, 성악설을 지지하는 편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어떤 사람에게 순수한 선의를 베풀어주는 순간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어려워하는 팀원을 돕고 싶어 하는 의지, 자라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지켜주고 싶다는 의지, 아픈 가족을 위해 무엇도 내줄 수 있는 의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함 속에 언제나 의미가 깔려 있기에, 그렇기에 내면의 악마에 언제나 기대게 되는 걸 거다. 나의 선한 행동으로 인해 이 사람이 고마워하기를, 나의 사랑이 그에게도 나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오기를,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군가도 똑같이 나를 그렇게 도와주기를. 대가 없는 마음이 아닌 지독한 대가를 위한 자신 스스로의 행동에 언제나 악마의 핑계를 댄다. '그가, 그렇게 하라고 하잖아,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어'라고.




그러나 처음에 말했듯이, 실은 악마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 목줄을 차고 들어와 엎드린 우리의 앞에 그는 그저 앉아 있을 뿐이다. 사실은 그 욕망의 고리를 끊고 뒤를 돌아 나간다 하더라도 악마는 붙잡지 않을 것이다. 그럴 필요 없이, 때가 되면 언제나 자신의 이름을 팔아 스스로의 욕망에 무릎 꿇고 올 날이 다시 올 거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 깨달음은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함 속에 인간다움이 있다. 완전히 빛으로만 살 수도 없고, 완전히 어둠 속에서만 살 수도 없다. 낮과 밤이 교차하듯, 내 안의 선과 악은 서로를 비추며 존재한다. 중요한 건 악마를 몰아내려는 무모한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떤 순간에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일이다. 쇠사슬이 느슨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나를 묶는 건 외부가 아니라 내 안이라는 자각.


결국, 절제의 빛이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서 악마는 여전히 내 옆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그는 나를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욕망을 억누르는 대신,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얼굴로 나타나는지 직시하는 순간, 나는 그와 타협하지 않고도 함께 숨 쉴 수 있다.


그러니 악마의 카드가 내게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너는 이미 자유다. 다만, 스스로 묶이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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