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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emperance - 조율의 시간

새로운 시작에는 받아들임이 필요한 법

by Karel Jo


죽음, 또는 새로운 시작, 실패와 절망의 상징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기로 한 Death 카드 다음으로 이어지는 14번째 카드는 Temperance, '절제'라는 이름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보통 이 카드가 갖는 키워드는 '조화와 균형, 인내와 중용'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일상생활의 다양한 측면에서 오는 많은 일들에 대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마음가짐을 피하고, 중용의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통 들려주곤 한다.


카드에는 한 여인이 물 위에 서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물을 다른 손으로 감싸고 있는 단지 안으로 채워 넣고 있다. 단순히 물을 따르는 행위로 보일 수 있지만, 끊김 없이 흐르고 있는 물 위로 지어진 표정은 기뻐 보이지도, 슬퍼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어느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묵묵히 상황을 옮기는 것을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그저, 감정과 이성이, 욕망과 책임이, 열정과 냉정이 어느 한쪽으로 옮겨가거나, 천천히 섞여나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이 카드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이 카드가 나오면 말문이 먼저 막히는 편이었다. 모든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고, 경우의 수를 많이 따져보는 편이기는 하지만 내려진 결정에 좌고우면 하지 않고 실행력 자체는 굉장히 빠른 나에게 있어, 이 카드는 그런 나를 오히려 '조급하다'라고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지금 당장의 실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실행으로 인해 돌아올 다른 영향을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숨을 고르며 '적정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Temperance는 절제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지만, 나에게 이 카드는 언제나 '조율'이라는 뜻으로 다가오곤 한다. 오묘한 표정으로 물을 따르는 행위를 보고 있노라면, 그 물이 차가운 물인지, 뜨거운 물인지, 아니면 그 중간 온도를 맞추기 위한 노력인지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모든 가능성을 다 품어내는 것이 '조율'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꿈을 자주 꾸곤 한다. 요 며칠, 회사에서 정규 포지션의 공석 채용 관련하여 인사팀과 많은 이견이 부딪쳐 며칠간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고,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시간들이 쌓여 왔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슬기롭게 풀리게 되었고, 비록 내가 원하는 결말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은 남기며 또 미래를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날에, 나는 매번 다른 꿈을 다섯 번 꾸어가며 밤잠을 설쳐야 했다. 꿈의 내용도, 나오는 사람도 모두가 달랐다. 공통점이라면 제각기 다른 회사 사람들이 나와 각자의 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끝나버렸다는 것. 일어날 때마다 그리고 나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나의 문을 두드렸고 찾아왔지만 나는 그들을 품을 수 없었다.


꿈에서 계속 회사 사람들이 나왔다는 건, 새로운 시작을 맞았다고는 해도 내가 아직 회사라는 조직에 대한 불만을 스스로 충분히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는 내가 아직 충분히 내 의견을 다 피력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충분히 삼켜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해결되었지만 그 사건은 아직 나에게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에, Temperance 카드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모든 것을 뜻대로 풀어가려 하지 말고, 다만 조화롭게 존재하게 하라."


나의 뜻대로 풀리는 해결이 아닌, '조화'로운 해결. 수많은 의견들이 그대로 내 안에 받아들여진 채로 나의 의견대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해결방식. 마치 비틀스의 오랜 명곡인 'Let it be'처럼, 지혜로운 그녀의 조언은 '그대로 두어라'였다. 통제되지 않는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지라는 그 한마디. 그것이 아마도 이 카드의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핵심이, 단순히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인 채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카드에서는 하나를 더 읽어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흐름'이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흐르는 물의 흐름처럼, 삶이란 내가 어떻게 억누르거나 끌어내려한다고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을 지나치게 강하게 잡으려 하면 빠져나가지만, 손가락 틈을 메워 잠시 동안 잡아둘 수는 있다. 그렇게 흐름을 잡으면, 다른 방향으로 보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절제는 참으라는 말이 아니다. 선택을 의식적으로 할 수 있도록, 너무 힘을 주지도 않고 너무 힘을 빼지도 않고,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을 흐름대로 이어갈 수 있는 조율의 힘을 깨치고, 하루하루를 원만하게 흐르도록 힘써야 한다는 그 메시지 앞에, 비로소 우리가 더 우리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던져준다.


살다 보면 언제나 선택 앞에서 흔들린다. 어느 쪽이 옳은가를 따지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된다. 꼭 한쪽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오히려 중요한 건, 내가 그 선택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Temperance는 그 사이에서 나를 붙잡고 말해준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섞어봐. 사랑과 두려움, 열정과 침묵, 일과 쉼, 이성과 감성. 그 사이에서 너만의 온도를 찾아.”


그 온도는 어떤 날은 뜨거울 것이고, 어떤 날은 식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균형이다. 흔들려도 괜찮다. 흘러가도 괜찮다. 삶은 결국 그렇게 ‘조율된 불완전함’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당신에게도 질문이 남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너무 많이 쥐고 있는가? 무엇을 흘려보내야, 비로소 다시 조화로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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