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아내가 했고, 나는 부모가 됐다

울음소리가 들리기 전까지의 시간

by Karel Jo


출산을 두세 달 앞두고 나서 새롭게 옮겨온 아파트 생활은, 그전까지의 빌라 생활과 분명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 더 이상 아내는 힘든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필요 없이 엘리베이터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고, 나 또한 더 이상 길가 옆에 주차공간이 없어 걱정할 필요 없이 지하주차장 안의 온기를 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내의 산부인과가 가까웠고 나와 아내의 첫 출산을 돕기 위해 우리는 나의 부모님과 한동안 같이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희망이가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 그렇게 우리는 이미 불어난 가족과 함께하고 있는 중이었다.


출산 예정일은 4월 중순의 어느 일, 달력 위에 빨갛게 동그라미로 표시된 그날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나와 아내는 미리 출산가방을 싸두고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출근하게 되면 혹시나 오늘은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조바심에 매일매일 퇴근시간이 되면 무엇도 쳐다보지 않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오르락내리락하는 배를 보며 부은 몸을 마사지해 주는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3월의 마지막 날, 출근한 지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시작한 것 같아.


그 한 마디에 나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으면서도 전혀 준비된 사람처럼 행동하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냉철하고 논리 정연한 모습으로 잘 알려진 나였지만, 어쩐지 전혀 안심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러 가진통인 것 같지만, 일단 가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빠져나온 발걸음은 이미 두려움과 설렘이 섞여 어떻게 걷는지도 모를 정도로 휘청이다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아내의 옆에서 지켜 주시며 문이 살짝 열렸다며, 아무래도 오늘 나올 것 같다고 이따 주기가 일정해지면 오늘 당장 분만을 위해 입원해야 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우리의 앞날에는 분명한 대사건임에 틀림없었으나, 어머니의 안정감과 경험에 의한 편안함은 따뜻한 격려와 함께 나와 아내를 너무 힘들지 않게 안심시켜 주었고, 그 고마움 속에 나와 아내는 핸드폰 타이머로 시간을 재며 기다렸다.


그 간격이 5분 남짓으로 일정해지자, 이제는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저녁 6시가 되어갈 무렵, 나는 회사에 다시 연락해 곧 분만을 위해 병원에 갈 예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아이가 나오면 다시 전화드리겠다는 말을 끝으로 미리 준비한 출산가방을 챙겨 아내와 함께 집 앞 병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는 우리의 주변은 놀랄 만큼 무심하게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무심함이 조금 더 고맙게 느껴졌다.


다행히 그날은 아내의 담당 선생님께서 당직을 보시는 날이었다. 우리는 선생님의 반가운 인사와 함께 입원 수속을 밟고 가족 분만실로 들어갔다. 분명 예정일보다 2주는 더 빠른 시간이었기에, 선생님께서는 희망이가 아빠 엄마를 빨리 보고 싶은가 보네요 하고 아내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주셨다.


자연분만을 하는 것은 나와 아내뿐이었기에, 분만실 안의 공기는 유난히 조용했다.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아내는 옆으로, 앞으로 누워 신음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나는 손을 붙잡은 채로 같이 한숨을 쉬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고요함 속에 아주 사소한 것들만이 강하게 느껴졌다. 간호사 분들의 내진을 위해 찾아오는 발걸음 소리랄지, 벽에 붙은 시계의 초침 소리랄지.


오히려 그런 조용함 속의 적막을 깨는 순간도 있었다. 급히 양수가 터져 찾아와 바로 제왕절개를 들어가야 하는 산모의 긴박한 울음소리 같은 일도 있었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희망이는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아내는 그렇게 그저 한숨을 몰아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병원에 온 지 꼬박 열 시간이 지나갈 무렵, 그때부터는 아내의 고통이 더욱 극심해졌다. 그제야 간호사분들이 본격적으로 분만 준비를 위해 여러 기구를 갖고 들어와 분만실을 꾸미셨고, 어느 순간에 나는 천으로 가려진 쪽을 보지 못하고 반대편으로 돌아서서 아내의 얼굴만을 보고 그 고통을 온전히 함께해 주지 못해 미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되는 시간, 준비될 수 없는 무력함에 나는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순간 의사 선생님께서 찾아와 희망이를 꺼낼 무렵, 아내의 처절한 비명 끝에 희망이는 무사히 우리 옆으로 와주었다. 아이가 울었다. 나와 아내의 아이가 울었다. 길거리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그 흔한 울음소리가 우리 아이의 울음소리로 들리는 순간, 그것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들렸다. 그제야 나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고, 무슨 정신인지도 모를 상태에서 탯줄을 잘랐다.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아무 감동적인 말도 떠올리지 못했다. 작고, 주름지고, 생각보다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 얼굴을 보며 든 첫 생각은 사랑이 아니라 안도였다. 아, 살아 있구나. 너도 무사히 우리 곁에 살아서 와주었고, 너를 품었던 나의 아내도 무사히 살아 지금 내 옆에서 숨을 쉬고 있구나. 그 단순한 사실 하나가 그날의 모든 의미를 대신했다.


아내가 후처리를 하는 동안 아이의 아버지로서 후속 행정처리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의 모습은 몹시 지쳐 보였지만, 더없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링거 거치대를 잡고 한 발자국씩 걸어오는 아내를 비록 당장은 안아줄 수 없었지만, 나는 아내의 어깨 옆에 서서 아내와 함께 병실로 들어가 아내를 눕히고 말했다.


"잘했어."


말할 힘도 없던 아내는 그 말 한마디에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위로이자 확인이었다. 서로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건네는 짧은 평가였다. 우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한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이전의 우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선언이 아니라, 조용한 상태 변화였다.


병실의 불은 밝았고, 아이는 잠들어 있었고, 우리는 지친 몸으로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특별한 음악도, 감격적인 연설도 없었다. 대신 아주 담담하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그날 이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확실했다. 이제 우리는 모두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은 두려움보다는, 이상하게도 차분한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일을, 이제야 시작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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