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만나지 못한 아이를 위해 준비한 것들
처가에도 우리의 희망을 더없이 널리 알리고 돌아오고 나니, 아내의 배도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고 시간의 속도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하던 산부인과의 방문 주기가 조금씩 짧아져만 갔고, 그 짧은 주기에서 초음파 속의 아이는 나날이 커지며 양수 안에서 힘껏 요동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건강한 모습 속에, 그리고 우리가 미처 겪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수많은 '필요한 것들'이 우리에게 찾아와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내의 검진일마다 나는 언제나 아내와 같이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아직 한국어가 조금은 서툰 아내의 언어를 돕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대기실에 빼곡하게 붙은 안내문들에 아내가 혼자 압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밀초음파, 기형아 검사, 임신성 당뇨 검사, 입체초음파, 백일해 접종 등 이런 걸 우리 부모님도 했을까? 싶은 것들이 수없이 나와 아내의 눈에 들어와 우리를 압박했다.
물론, 아내의 담당 선생님께서는 몹시 차분하고 담담하신 성격이신 분이라, 우리가 조금이라도 불안해할 때마다 이 검사는 지금 어떤 단계를 뜻하는 것이며, 확률은 어떻고, 대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지금 의학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조금의 불안감이라도 없애는 차원이라고 덤덤하게 설명해 주셨다.
우리는 그 안정감 있는 확신에 안도했지만, 우리 부모님 시대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과 지금 시대의 부모가 된다는 것이 결국에는 생존의 확률과 가능성을 몰랐던 시절에서 제일 처음부터 알게 되고, 그를 통감하며 살아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갔다. 검사가 끝난 날에 초음파 사진과 영상을 근처 카페에서 몇 번이고 돌려 보며, 이래서 예전엔 돌잔치를 했고, 60살만 살아도 오래 잘 살았다고 환갑잔치를 했던 거구나 하고 생각하며 말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의 보험이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보험이란 게 미래를 대비하는 거기 때문에 별별 보험이 다 있다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에게 무슨 보험을 드는 걸까? 하는 생각을 우리는 처음에 했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검사를 거치면서 보험 상담을 듣고, 약관을 읽어보니 아, 이것은 아이의 불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또한 세대가 발전하면서 혹시 모를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대비하는 또 다른 이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아보험 또한 다른 보험과 마찬가지로, 최악의 상황을 이겨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굳이 들지 않아도 되지만, 최선을 지키기 위한 낙관의 또 다른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보험을 가입했다. 여담으로, 보통 태아보험은 남자아이를 기준으로 가입되지만 성별이 여자로 확정되는 순간 사고 발생 위험의 리스크가 적어 보험금이 환급된다는 재밌는 사실까지 알게 된 채로.
보험을 가입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말했다.
“이렇게까지 준비해야 하는 줄은 몰랐어.”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본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부해야 할 일이었고, 선택해야 할 일이었으며, 때로는 결단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검사와 배움 끝에, 우리가 내린 결단 중 가장 큰 것은,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을 떠나기로 한 결정이었다.
우리가 살던 신혼집 투룸 빌라는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햇빛도 잘 들었고, 아내의 향수를 덜어줄 고려인 마트도 가까웠고, 무엇보다 우리 둘의 추억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충분했다. 그러나 그 ‘충분함’의 기준이, 아이의 등장과 함께 바뀌었다. 3층 복도가 있긴 하나 집 앞에 유모차를 둘 공간, 3층까지 걸어 올라가야만 하는 엘리베이터의 부재, 병원과의 거리, 그리고 대학가 근처기 때문에 들려오는 소음.
아이가 없었더라면 모든 것이 괜찮았을 추억이 하나둘씩 이 집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로 중요해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는 주말마다 아내의 출산 전에 미리 들어가 아이와 함께 새롭게 정착할 아파트 단지를 보러 다녔다. 비슷해 보이는 구조, 조금씩 다른 전망,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는 일.
다행히 병원 바로 옆 아파트에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으로 전세 계약서를 쓰던 날, 나는 문득 이사가 단순히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 바뀌는 신호였고, 책임의 반경이 넓어지는 사건이었다. 열쇠를 받아 들고 텅 빈 집에 들어섰을 때, 그 공간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곧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로 채워질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사 후 첫날밤, 우리는 바닥에 나란히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가구는 아직 오지 않았고, 집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안정되어 있었다. 아내는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가, 희망이 집이네.” 그 말 한마디에 공간은 비로소 집이 되었다.
임신 중기는 그렇게 지나갔다. 검사표와 계약서, 약관과 주소 변경 신청서 사이를 오가며. 그 모든 과정은 때로는 번거롭고, 피곤했지만, 하나의 공통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한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어른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집에서 잠시 생각했다. 인간은 위대한 계획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작은 준비들의 총합으로 살아간다고. 우리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쌓여 갔다. 그리고 그 평범한 준비의 연속 속에서, 희망이는 오늘도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이 세계에 적응하는 연습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