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을 지나 비행기를 탔다, 우리가 가족이 되는 방식

다른 언어로 축복받는 아이를 기다리며

by Karel Jo


아내의 담당 산부인과 선생님은 굉장히 인자하신 분이었다. 단순히 인자함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이셨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우리가 작은 것 하나라도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닐까, 불안 섞인 목소리로 질문할 때면 언제나 선생님께서는 간단히 답해 주셨다. "지극히 정상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아내가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언제쯤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에 대해 물어볼지 어렴풋이 생각해 두셨던 모양인지, 추석을 앞두고 방문한 정기검사일에 먼저 말씀해 주셨다. 이제부터는 비행기를 타도 괜찮을 정도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장거리를 권장할 수는 없겠지만, 갈 일이 있으시면 부디 즐겁게 다녀오시고 그 후에 뵙겠다고 말이다.


선생님의 격려를 뒤로 한 채 우리는 그렇게 집에 가서 이제 우리의 희망을 처가에도 전할 준비를 시작했다. 비행기 표를 예매하는 그 순간부터, 이 여정은 우리가 단순히 오갔던 다른 여정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갖고 있었다. 언제나 우리 둘만의 시간에 조용한 동승자가 한 명 더 늘어났다는 점은 모든 선택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직항이 없다는 점은 나의 고민을 더 늘리는 일이었다.


아내가 살고 있는 자포리자는 다행히 국제공항이 있는 곳이라, 이스탄불을 거쳐 가면 최단 시간으로는 환승을 포함해 16시간 정도 걸리게 된다. 운이 나빠 환승시간이 길어지면 이스탄불에서만 꼬박 10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지만, 터키항공은 그럴 때 호텔에서 쉴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우리는 여러 환승지가 있었지만, 가격적인 면에서나 편의성에서나 가장 나았던 터키항공을 타고 처가로 향하기로 정했다.




여행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었지만, 그리고 그 여행의 목적이 아내의 임신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더더욱이나 설렐 일이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까지 설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도 비행기 이륙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던 아내는 안전벨트의 조임 아래 숨을 고르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입덧이 약해지긴 했지만 비행기 안의 낯선 공기는 아내에게 결코 긍정적인 영향은 아니었다. 기내식 두 번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를 일 없이 그저 따뜻한 차만이 아내를 안심시킬 수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손을 같이 포개어 머리를 한쪽 어깨에 기대게 해 줄 수 있는 것뿐이었다.


이스탄불까지 걸리는 열 시간 정도의 비행시간 동안 나는 문득,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아내를 만나기 전 반복했던 몇 번의 연애는,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다 차갑게 식어 버리고 꺼져 버렸던 의지를 감출 길이 없어 언제나 끝을 맺었던 기억만이 선명하다. 그러나 지금, 아내를 선택한 이후로는 아내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렇게 서로의 나라에 방문하는, 단순히 아내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함께하겠다는 의지 아래에 나의 행동도 굉장히 선명해졌다.


다시 말해, 과거에 즐거움과 새로움만을 찾아 헤맸던 내가, 아내를 만나 이제는 기꺼이 불편함도, 힘듦도 함께 하겠다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꽤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 결실로, 나와 아내 사이에 자라고 있는 희망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현실이 눈앞에 오다니. 그런 생각 끝에 나도 잠시 눈을 붙일 뻔한 순간에, 비행기는 그렇게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을 지나, 긴 시간 끝에 마침내 자포리자 공항에 내렸을 때 아내의 어깨가 풀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는 조금 여전히 어색한 이방인의 나라지만, 아내는 비로소 자기답게 있을 수 있는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조용히 우리를 감싸 안아주는 공기 속에, 우리를 마중 나온 아내의 삼촌과 장모님의 모습이 보였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테니 얼른 집에 가서 쉬자며 차를 재촉해 내달린 집의 끝에 짐을 풀고 따스한 차와 다과를 내어주시는 장모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우리는 조심스럽게 상자 하나를 장모님께 내밀었다. 우리가 으레 사 오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장모님께서는 자꾸 뭘 이런 걸 사 오냐며 손사래를 치며 내게 눈을 흘기셨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보고 장모님께서는 여러 감정 속에 눈물과 함께 아내를 안아 주었다.


내가 비록 우크라이나어나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 시간만큼에서는 언어의 다름이 문제가 되는 시간은 아니었다. 가족이 늘어났다는 그 사실은 만국이 모두 똑같기에, 번역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시간만큼은, 우리 모두 하나 된 사람으로서 순수히 우리의 가족으로 들어올 아이에 대한 기다림의 행복, 그리고 벅참 뿐이었다. 그리고 장모님은 곧 나의 손을 잡으며 내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아들아, 내 딸에게, 나에게 좋은 선물을 안겨 주어 고맙다."


나는 그렇게 살가운 아들은 아니었다. 장모님에게도 아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감정적으로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언제나 나는 딱히 부모님께 정겨운 아들도, 장모님께 친밀한 사위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게 된 순간, 장모님의 진심이 길게 울리며 나 또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잘하겠다고, 언제나 믿고 믿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저녁 식탁에는 아내가 어릴 적 먹던 음식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우크라이나 음식을 먹은 지 꽤 되어 아내가 힘들어할까 봐 짐짓 걱정되었지만, 역시 어머니와 고향의 맛은 강력한 힘이었다. 장모님의 보르시를 아내는 몇 숟갈을 마시더니, 곧 장모님이 차려주신 정찬을 즐기며 오랜만에 즐거운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 조용한 연대감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이의 희망이, 처가에도 잘 전해졌구나 하고.


밤이 되어 창밖에 낯선 별자리가 걸렸을 때, 나는 아내의 배 위에 손을 얹고 생각했다. 우리의 사랑은 국경을 넘었고, 이제 세대를 건너가려 하고 있었다. 세계적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사실이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자라난 두 사람이 하나의 희망을 품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세계적이지 않은가.


희망이는 그날도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먼 하늘을 날아와 도착한 이 집에서, 다른 언어의 축복을 들으며.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랑은 결국 이동하는 일이라는 것을. 언젠가 희망이가 나오게 된다면 누군가는 이 아이를 다른 발음으로 부를 것이고, 다른 언어로 기도를 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가 이 아이의 새로운 세계가 되겠지. 그 세계를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아이는 우리에게 큰 축복이자 태명 그대로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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