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다녀온 뒤, 우리의 삶에 아이가 들어왔다

같은 바다를 보던 두 사람에게 생긴 일

by Karel Jo


태안의 바닷가에 걸린 석양의 아름다움을 뒤로한 채 돌아온 우리는 한동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우리의 평범한 삶을 이어갔다. 특별히 변할 것 없는, 아침에는 수업을 들으러 가는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와 저녁이면 온갖 나라의 언어들이 섞이는 그런 일상 속에, 둘이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문득 아내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만약 우리가 아이를 갖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


아내와 나는 1년 남짓의 짧은 연애를 하던 순간에도 일상의 가십이 아닌, 삶의 여러 방향과 궤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곤 했다. 당연히 아이에 대해서도 얘기해 본 적이 있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남매의 마지막 아들로 태어난 나는 딱히 많은 아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외동으로 태어난 아내는 어릴 때부터 형제관계는 꼭 외동이 아닌 둘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그러나 꽤 일상적인 그 질문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나도 적지 않은 나이니,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기를지를 고민해야겠지?'라고 넘기며 아내가 먹은 저녁 그릇까지 포개어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딱히 언제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결혼을 한 지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조금 더 이후에 일어날 일이라는 생각이었을 뿐.




그 이야기가 오고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저녁 시간, 나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저녁 여섯 시쯤에 회사에서 돌아와 투룸 빌라의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배가 고프다고 말하며 들어온 내 눈앞에 처음 보인 것은 식탁 위에 잘 차려진 저녁 한상이 아닌,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두 팔 벌려 나를 맞이하고 있는 아내였다. 나는 가방을 현관문 옆에 내려놓고 아내를 안아주며 의아한 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뭐 이상한 일이라도 있었나? 누가 현관문 앞에 왔다 갔다 하고 그랬어?"


아내는 살며시 웃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턱으로 쓱 식탁 가운데를 가리키면서 말을 줄였다. 그러고 보니 식탁 위에 저녁식사는 없지만, 선물 포장으로 무언가 올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소포라도 온 건가? 하고 생각하며 포장을 풀어 보니, 내가 알고 있는 분홍색과 흰색이 잘 조합된 그 막대기가 보였다. 선명한 두 줄을 띈 채로.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아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그 두 줄을 본 나의 첫 생각은,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언가 말해야 함에는 틀림없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감동이 벅차올라서도 아닌, 당황해서도 아닌, 기쁨이나 책임감에 휩싸여서도 아니라, 그저 그 상황 자체가 그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빠가, 아내가 엄마가, 우리가 부모가 된다.


곧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었기에 나는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감정 속에 오랫동안 머물 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의 반응을 살피는 아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시 그녀를 내 품에 안아주고 그저 한 마디 해줄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라는 한 마디는 비록 불충분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한 마디였다.


그날 밤, 나는 팀장님께 내일 갑작스럽게 병원을 가볼 일이 있어 죄송하지만 연차를 내야 한다는 연락을 드리고 아내와 한 침대에 누워 며칠 전 나눴던 아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되었다. 이번엔, 보다 현실적이고 진지하게. 이름은 어떻게 할까, 이 집에서 언젠가 그러면 옮겨야 할까, 그보다, 부모님들에게는 언제쯤 알려야 할까 등등.


현실적인 말들이었지만, 그러나 모든 대화의 시점은 이제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대화의 중심은 더 이상 나와 아내만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 낼 우리만의 '가족'이 처음으로 생겨났다. 그 바닷노을을 뒤로하고 돌아온 날부터, 해류의 흐름이 우리의 마음대로 바뀌지 않듯이, 정해진 방향 속에 우리는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짧은 반년 간의 신혼생활을 마치고 가족이라는 해류에 올라타 내릴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나는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누나들이 예전부터 내가 결혼하기도 전에 추천해 준 산부인과의 선생님을 만나러 병원에 갔다. 두 줄이 뜬 테스트기를 갖고, 아내의 이름으로 접수한 뒤 인자하신 선생님을 처음 뵙고 피검사를 통해 받은 결과는, 확정적인 임신 선언이었다. 주기가 거의 일정하게 움직이는 아내 덕분에 선생님께서는 혹시 모르니 초음파도 한 번 보자고 말씀하셨고, 그날 아내의 뱃속에 조그맣게 열린, 태낭을 마주 볼 수 있었다.


아내의 뱃속에서 그 새하얀 공간 속에 작게 열린 검은 그 방에서,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그 여름에 바다에서 받은 선물은, 추억이 아니라 방향이었구나. 그리고 그 방향 끝에서, 지금 이 조용한 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반년 동안의 신혼생활은,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유난히 가벼운 시간이었다. 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틀리지도 않았다. 투룸 빌라의 좁은 공간과 소란스러운 밤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법을 배웠고, 그 익숙함이 오래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단단해졌다고 여겼던 둘의 시간 끝에, 아무 예고도 없이 하나가 더해졌다.


아직은 이름도 얼굴도 없는 작은 존재 하나가 우리의 삶에 들어오며, 그동안 쌓아온 모든 날들을 새로운 의미로 묶어냈다. 갑작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반년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준비해 온 시간이, 사실은 이 순간을 위한 연습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집에 살고 있었지만,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이 벅차게, 그리고 조용히 마음을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우리가 만든 세계를 바깥으로 꺼내 놓아야 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들의 삶 속으로 처음으로 우리의 ‘가족’을 들여보내는 방법을, 특히, 나의 부모님도 그렇지만 나를 믿고 아내를 보내준 처가에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 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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