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바다 위에 우리의 삶이 합쳐진 순간
투룸 빌라의 신혼생활, 지금에 와서는 유니콘 같이 들릴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신혼부부라면 무릇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신축 아파트에서 커뮤니티 생활을 즐기며 살아야 하는 것이 정석같이 굳어진 지금의 사회에서는 거의 유니콘 같은 삶의 궤적이겠지. 물론, 그 당시에서도 그렇게까지 흔한 풍경은 아니었을 수 있다. 집 앞에는 변변한 주차장도 없어 나는 항상 대학교 정문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까지 조금 걸어야 했고, 그래서 우리는 저녁을 집에서 먹기도 하지만 나의 퇴근시간에 맞춰 아내가 밖에 나와 데이트를 즐기는 경우도 많았다.
저녁 데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는 광경은 신혼부부의 풍경과는 꽤 다른 편이었다. 대학교 근처 빌라촌에 살았기 때문에, 중간고사가 끝나거나 하는 기간에는 시험의 중압감에서 벗어난 청춘들의 해방된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때도 있었고, 개강 때나 종강 때는 지금은 거의 하지 않겠지만 단체로 모여 XX과 파이팅!!라는 낡은 마음들이 오가는 때도 많았다. 학생들이 없을 때에는, 지역적 특성상 고려인들이 누구를 혼내주러 가겠다는 소리를 러시아어로 중얼거리는 것을 쉽게 들을 수도 있는, 그 무엇 하나 신혼부부의 낭만과는 약간은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아내는 그 투룸 빌라에서 우리만의 즐거움 속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주말만 되면 차를 내달려 경치 좋은 곳에서 서로의 추억을 쌓기도 하고, 집 앞 김밥천국 사장님과 안면을 터서 밥집이 된 순간부터는 저녁에 찾아가면 서비스 반찬이라도 하나씩 더 나오게 되는 그런 시간이 흘러간 몇 개월 뒤, 아내와 내가 결혼한 지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함께 보낼 시간이 찾아오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영화 '접속'같이 인터넷으로 만난 사이로, 한국과 우크라이나라는 서로 다른 두 나라에서 장거리 연애를 1년 정도하고 결혼한 사이다. 그 기간 중 다행히 반년 정도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연애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연애 기간 동안 함께 '여행'을 해본 경험이 없다. 내가 아내를 찾아 중국으로 갈 때는 내가 휴가였지만 아내가 일을 하고 있었고, 아내가 휴가로 한국에 왔을 때는 내가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정도는 휴가를 내고 함께 어딘가 갈 수도 있었지만, 여름휴가를 온전히 함께 보내는 것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내가 다니던 직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의 1차 협력사로, 자동차 공장이 쉬는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연차휴가 외에 1주일은 여름휴가를 별도로 제공받는 괜찮은 복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와 아내는, 부부로서 맞는 첫 여름휴가를 어디서 보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며 같이 논의했다.
아내나 나나, 여행에 대한 취향이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나 아내나 서로 사람이 많고 북적거리는 유적지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그다지 취향이 아니고, 경치가 좋은 곳에서 여유를 즐기는 편을 더 선호한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도란도란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내와 나의 여행은 절대적으로 기억이었지, 경험은 아니다.
다만, 성격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아내는 계획적인 면에는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는 성격이라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을 잔뜩 저장해 두고, 한 번에 나에게 여기를 가고 싶다고 늘어놓는 식으로 여행 계획이 시작된다. 문제는 가고 싶은 곳이 도시 내에서 동선을 짜기 어려울 정도로 사방에 퍼져 있다는 점인데, 예를 들어 제주도로 치면 숙소는 중문에 잡을 거지만 보고 싶은 곳은 성산에 있거나, 애월에 있거나 하는 식이다. 다행인 점은, 내 성향은 완전히 아내와 반대되어, 이런 말도 안 되는 동선을 멋지게 정리해 나가는 것에 큰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아내의 이런 무계획성이 고마웠다.
이런 배경 끝에, 아내는 우리의 첫 여행지로 어디가 좋겠냐는 나의 질문에 딱 한 마디로 답했다.
"어디든 바다에 가고 싶어."
아내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주의 주도인 자포리자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우크라이나도 우즈베키스탄과 헷갈려하시는 분들이 많고, 막연히 그저 김태희가 밭 가는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는 나라인데 자포리자라는 생소한 지역명은 더더욱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조금 친숙하게 이해를 돕자면 대략 우리나라로 치면 울산 같은 공업도시의 위치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우자동차를 다니신 분들은 조금 익숙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대우자동차와 생산공장을 같이 썼던 것으로 알고 있고, 처음에 나도 그래서 처가를 방문했을 때 누비라 같은 예전 대우자동차가 우크라이나 자동차인 줄 아시는 분들이 많아 신기했던 적이 있었다. 어쨌든, 드니프로 강을 끼고 발달한 이 공업도시는, 바다가 그리 가깝지는 않은 도시다.
반면 나는 한국에서 대부분을 서해안을 따라 살아왔다.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나 값싼 갈치를 배불리 먹고 자라고, 안산으로 올라왔을 때는 조개류를 흔히 먹고 살아온, 무엇보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께서 어부였던 그야말로 바다의 아들이었다. 정작 아버지는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고기도 좋아했지만 해산물에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바다에 대해 그렇게 특별한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물론, 산과 바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절대적으로 바다였지만. 어쨌든 바다가 없는 곳에서 자란(내 기준에서, 아내는 지금도 드니프로 강 주변의 모래사장은 바다와 같다고 말한다) 아내가 바다를 동경하는 것은 그럴 법한 일이다.
우리의 첫 여행지는, 그렇게 서해안의 유명 바다인 안면도로 정해졌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로 일단 가까워서 그리 멀리 갈 필요가 없었고, 펜션이 많아 해수욕장 접근성이 굉장히 용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가 좋아하는 갑각류와 조개류의 명소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휴가의 첫날, 차를 내달려 고속도로를 지나 태안에 접어들어, 우리는 안면도에 도착했다. 해수욕장 근처의 펜션에 체크인을 한 뒤, 그다음부터 우리의 기억은 그저 바다였다. 파라솔 밑에서 밀물이 들어올 때면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물속에 몸을 던져 해수욕을 즐기고, 바다 위로 일몰이 내려앉는 순간에는 수영복을 벗고 커플 샌들을 신어 서해안 백사장에 우리의 발자취를 남겼다.
신혼의 휴가에, 그리 큰 묘사가 많이 필요할까. 바다에서 태어난 나와, 바다를 동경한 아내는 그렇게 서로 다른 곳에서 이제는 같은 바다로 다시 만나, 서로의 삶에 중요한 처음을 기록해나가고 있었다.
서로의 바다가 하나로 합쳐진 그 순간이 지나, 휴가가 끝나고 다시 빌라로 돌아왔을 때, 집은 떠나기 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우리는 분명 조금 달라져 있었다. 바닷물에 젖었던 피부는 이미 말라 있었고, 안면도의 냄새도 차 안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같은 바다에서 보냈던 시간만큼 우리의 삶이 조금 더 하나로 융화되었다는 느낌에 우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바다는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지만, 같은 방향을 보게 만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사실은 그 어머니의 바다가, 우리에게 더 큰 선물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