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내의 몸속에서, 나의 마음에서 자라던 것

by Karel Jo


나와 아내의 삶에 들어온 뱃속의 작은 생명은, 우리가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순간에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아이의 임신이 확정되자 나는 장모님께 이 사실을 빨리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아내에게 건넸지만, 아내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직접 가서 말해주고 싶다고 얘기했다. 어차피 추석 즈음에 한 번 처가에 갈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뒤늦게 알면 서운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아내의 의견에 동의했고, 먼저 내 쪽에 이 사실을 알렸다.


이미 나의 집에서 막내였기에 손주를 네 명이나 갖고 있는 부모님이기에 나는 사실 그다지 감동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무엇이든 첫 경험이 제일 중요한 법인데 일단 네 번이나 겪지 않으셨나. 그러나 나의 생각과 달리, 언제나 아이로 남아있던 막내아들마저 이제 부모님이 된다는 사실이 많이 와닿으셨는지, 부모님은 연신 아내의 손을 붙잡고 너무 수고했고, 고생했고 장하다는 말로 아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생명을 놓고 나와 아내는 태명을 뭘로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는데, 그렇게 깊게 고민하지 않고 둘 모두가 동의한 태명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Надія, 우크라이나어로 희망이라는 뜻으로,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이를 가진 매 순간이 우리에겐 미래에 대한 기쁨과 무언가 잘 될 거라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러나, 나와 아내의 희망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임신의 기쁨에 기대어 망각한, 크나큰 난관이 부딪쳐 온 것이다. 입덧이었다.


결혼식을 치른 뒤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을 때 먼저 아이를 낳은 수많은 선배 남편과 부모님들이 그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언젠가 아이를 갖게 된다면, 다른 건 몰라도 입덧 기간 동안을 잘 대처해야 평생이 편해질 거라고. 나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말을 들어도, 그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에 대한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허허실실 웃을 뿐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구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을까 하고.


아마도 나에게 있어 임신이란 것은, 입덧이란 것은 그 정도로 작은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솔직하게, 그렇게 큰일이 아닌데 호들갑을 떨고 유난스럽게 군다는 생각도 가끔 할 정도로,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자신감이 나의 무지에서 오는 자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내의 입덧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시작되었다. 어느 주말 아침, 보통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나 차를 한 잔 마시며 정신을 깨우는 우리였기에 나는 습관적으로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아내를 위해 차와 간단한 토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토스트가 구워지고 차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때에, 아내가 나와 늘 마시던 차 한 잔에 입을 갖다 댄 뒤, 잠시 후 그 잔을 내려놓고 가만히 서 있었다.


"왜 그래? 맛이 별로야? 매번 마시던 건데."

-그냥 좀...


아내는 딱히 구역질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좋아하던 홍차 한 잔을 두고, 마시고 싶지만 마실 수 없다는 묘한 표정으로 말을 길게 잇질 못했다. 결국 아내는 그날 아침을 먹지 못했고, 나는 아내에게 물을 한 잔 따라주며 등을 쓸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 자신의 무력감을 통감하며 아내의 임신을 도와주어야 했다. 회사에 출근한 뒤 안부를 묻는 메시지의 대부분은 무언가 먹고 싶지만 먹을 수 없는 아내의 안타까움이었다. 화면에 놓이는 문장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쓰인 차마 나에게 하지 못하는 '힘들어'라는 말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다 한들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바깥공기를 가득 머금은 외투에서 풍기는 냄새조차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향을 지운 채 물을 한 잔 따라주고, 등을 토닥이며 쓸어주고, 다시 물을 치워내는 일 정도밖에는 할 수 없었다.


며칠을 그렇게 반복하는 사이에도 희망이는 다행히 잘 자라고 있었다.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할 때마다 조금씩 커지는 심장 박동 소리와, 초음파 사이에서 꼬물거리는 힘찬 태동을 볼 때마다 아내의 힘든 얼굴도 조금은 가시곤 했었다. 그러나 그 기쁨과 희망 속에 언제나 아내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최선을 다해 엄마의 길을 벌써 걷고 있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그 희망이 이렇게 생긴 것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야 희망이라는 것은, 현실이 그토록 녹록지는 않기에 미래에 이보다 잘 될 거라는 것에 대한 믿음과 기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해, 미래를 위해 지금의 힘듦을 기꺼이 지나가겠다는 약속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이를 통해 알았다.


다행히도, 한 달 정도 고생하자 아내의 입덧은 조금씩 안정되어 다시 좋아하는 홍차와 토스트 한 조각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가끔씩 얼굴을 돌리는 때가 없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처음의 그 무력감에 비하면 나도 아내도, 꽤 적응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


여전히 작게 꼬물대는 아이와, 그를 매일 조금씩 견디는 아내 사이에서 나 또한 버티는 법을 그렇게 배우게 되었다. 임신을 대하는 남편의 자세한,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대신 토해낼 수도 없기에, 옆에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잘 버텨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같이, 지금을 함께 지나가겠다는 다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희망이는, 아내의 몸속에서, 나의 마음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희망을 처가에 보여줄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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